주역 - 이론

주역이론 4) 보훈(保訓)에 나타난 중(中)의 의미

이칭맨 2017. 9. 8. 13:11


<유리성(羑里城)에 주(周)나라 문왕(文王) 동상>





이번 동영상은 앞서 ()자의 해설 강의에서 중()에 대한 의미를 보충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아래 글은 동영상 내용의 요약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보훈(保訓)》이란 2008년 세상에 공개된 전국시대 죽간인 청화간(淸華簡)에 있던 내용입니다. 이는 상서(尙書), 혹은 서경(書經)이라 불리던 역사 문헌과 같은 류의 문헌으로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 병들어 누워서 아들인 무왕(武王)에게 유훈으로 남긴 말을 기록한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보훈(保訓)》이라는 글에서 문왕(文王)은 중(中)의 개념에 대해 아들인 무왕(武王)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왕(文王)이 말하는 중(中)의 개념이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문왕(文王)은 이러한 중(中)의 개념을 고대의 순(舜)임금의 중(中)과, 상(商)나라의 선조인 왕해(王亥)라는 인물의 중(中)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 순(舜)임금의 중(中)


먼저 보훈(保訓)에 나오는 순(舜)임금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昔舜舊作小人 親耕于鬲茅 恐求中. 自稽厥志 不違于庶萬姓之多欲  厥有施于上下遠邇 乃易位設稽 測陰陽之物 咸順不逆. 舜旣得中 言不易實變名, 身滋備惟允, 翼翼不懈, 用作三降之德. 帝堯嘉之 用授厥緒.


『 옛날에 순임금이 오랫동안 소인(小人) 신분으로 친히 역산(歷山)에서 경작을 하면서, 중(中)을 구하는 것을 신중히 여겼다. 스스로 그 뜻을 살펴서 모든 백성들의 서로 다른 바램들에 어긋나지 않게 하였고, 그 뜻이 상하원근에 펼쳐지게 되었다.
이에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신분이 올라서) 그 생각했던 것을 베풀고 음양지물(陰陽之物, 모든 대립되는 일들)을 헤아리니 모두가 순조롭고 거스르지 않았다. 순임금이 이미 중(中)을 얻은 뒤에도 말이 실제를 바꾸고 이름을 바꾸는 일이 없이 말과 실제가 일관되게 하였으며, 스스로 더욱 삼가고 신중하여 게을리하지 않아 삼대(三代)로 전해 내려가는 덕(德)을 지었다. 요(堯)임금이 이를 기뻐하여 왕위를 물려주었다.』1)


이 글에서 순(舜) 임금의 중(中)은 음양지물(陰陽之物) 혹은 모든 백성들의 서로 다른 바람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서로 대립되는 의견을 중앙에서 중도(中道)에 맞게 조절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2. 왕해(王亥)의 중(中)


왕해(王亥. BC1854 ~ BC1803)는 고대 하(夏)나라 시기에 상(商) 부족의 7대 수령입니다. 그는 소를 부리는 법과 소가 끄는 수레(牛車)를 개발하였고, 남아도는 소와 양을 이끌고 이웃 부족으로 교역을 떠나 상업을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상(商)나라의 선조인 왕해(王亥)가 상업을 부흥시켜서 후대에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이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昔微叚中于河, 以復有易, 有易服厥罪. 微無害. 乃歸中于河.

『옛날에 상갑미(上甲微)가 하백(河伯)에게서 중(中)을 빌려서(叚中:가중) 유역(有易)에게 복수를 하고 유역(有易)은 그 죄를 받았다. 상갑미는 해를 입지 않았으며 하백에게 중(中)을 돌려주었다(歸中:귀중). 』2)


이 이야기는 상(商)나라의 선조인 왕해(王亥)가 유역(有易)이라는 땅에 교역을 나갔다가 그곳에 군주인 면신(綿臣)에게 죽임을 당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왕해(王亥)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왕해(王亥)의 동생인 상갑미(上甲微)가 하백(河伯)에게서 군사를 빌려서 유역을 공격하고 면신(綿臣)을 죽인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군사를 빌린 것을 중(中)을 빌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中)이 군사와 관련된 것이라는 근거들은 청화대학의 이학근(李學勤) 교수가 밝혀 놓고 있는데, 그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위에 문장은 《죽서기년(竹書紀年)》이란 역사서에 나오는 아래 기록과 그 문장이 비슷합니다.


帝泄 16年: 殷侯微以河伯之師伐有易,殺其君綿臣.

『제설 16년 : 은후(殷侯) 미(微)가 하백(河伯)의 군사를 빌어 유역(有易)을 정벌하고 그 군(君)인 면신(綿臣)을 죽였다.』3)


한편 중국에 《산해경ㆍ대황동경(山海經ㆍ大荒東經)》에 대한 동진(東晋)시대 곽박(郭璞, 276~324年)의 주(注)에서 《죽서(竹書)》에서 인용한 글이라고 적은 문장이 있는데 그 문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殷主甲微假師于河伯以伐有易, 滅之, 遂殺其君綿臣也.
『은(殷)의 군주인 갑미(甲微)가 하백(河伯)에게 군사를 빌려서 유역(有易)을 정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군주인 면신(綿臣)
죽였다. 』4)


바로 이 문장의 ‘가사우하백(假師于河伯)’과 《보훈(保訓)》의 ‘가중우하(叚中於河)’에 문장이 비슷하므로 이학근(李學勤) 교수는 《보훈(保訓)》의 하(河)를 유역(有易)의 군주인 하백(河伯)으로 보고, 가(叚)는 빌릴 가(假)자로 해석합니다.


문왕(文王)이 보훈에서 두 번째로 언급한 중(中)은 중도의 개념보다는 우선적으로 깃발의 의미가 강합니다. 본래 중(中)이란 갑골문자에서는 깃발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깃발은 중앙에 세워 두고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상징합니다. 고로 중(中)이라는 깃발은 단순한 깃발이 아니라 지도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고로 상갑미가 중(中)을 빌렸다는 것은 하백(河伯)의 군사를 지휘할 권한의 표식인 깃발을 빌렸다는 뜻이고, 이는 곧 하백(河伯)의 군사를 빌렸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왕해(王亥)의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중(中)은 본래 갑골문자에서 나오는 중(中)의 개념과 더 가깝고, 순(舜)임금이 강조한 중도(中道)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商) 부족과 유역(有易)의 대립되는 상황에서 그 중간에 있는 하백(河伯)이 상(商)에게 군사를 빌려준 것은 하백(河伯)이 중간의 입장에서 상(商)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위에 두 가지 중(中)의 개념을 종합해서 문왕(文王)이 말하고자 한 중(中)은 중도(中道)의 덕(德)과, 그러한 중도(中道)의 덕으로 세상에 수많은 대립되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중심적인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1~주 4) 淸華大學藏戰國竹簡(壹) : 이학근(李學勤) 主编 147p 中西書局 2010年

© 2017. 9 Joongh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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