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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천자문을 욀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네 글자가 바로 ‘천지현황(天地玄黃)’입니다. 이는 직역하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뜻인데요, 여기서 검다는 것과 누렇다는 것은 단지 그 색깔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색깔이 상징하는 또 다른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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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玄)자가 왜 검다는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와 비슷한 모양의 여러 글자들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위에 나오는 글자들은 모두 현(玄)자와 비슷한 모양인데요, 이 글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중앙에서 무언가가 꼬인 모양이란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실 사(糸)’자에서 분명히 나타나죠. 바로 실이 중간에서 꼬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다시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중앙
현(玄)자와 비슷한 글자들의 이미지는 위, 아래 양쪽을 중간에서 끈으로 묶은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중앙의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오(午)자의 경우 십이지(十二地)의 중앙부위에 오는데, 그 갑골문이 중앙에서 꼬인 모양이므로 그 중앙에서 양쪽을 이어준다는 의미로 중앙에 오는 것입니다. 숫자 오(五)의 경우도 1부터 10까지 숫자의 중앙이므로 위, 아래의 중앙에서 X자 모양으로 교차하면서 꼬인 모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2) 묶다. 자물쇠
이렇게 중앙에서 실이 꼬인 것은 줄로 묶은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가리고 덮어서 줄로 묶어두면 그 안의 것이 보이지 않으므로 어둡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묶는다는 것은 오늘날의 자물쇠나 빗장의 원시적인 형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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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玄)이 어둡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단지 이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玄)자가 중앙에서 꼬인 모양은 그 실을 꼬기 위해 빙글빙글 돌리는 선전(旋轉)의 이미지가 추가되게 됩니다.
3) 빙글빙글 돌아감, 원운동, 선전(旋轉)
중국 학자인 왕소순(王小盾)은 곽말약(郭沫若), 양향규(楊向奎)의 학설을 인용하여 현(玄)의 어두움은 빙빙 도는 어지러운 때에 나타나는 색채감각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들은 이런 이유로 ‘검을 현(玄)’자에 ‘눈 목(目)’자가 합쳐진 것이 ‘어지러울 현(眩)’자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2 그리고 이렇게 빙빙 돌면서 움직여 나아가는 것을 선전(旋轉)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해석은 매우 합당한 해석입니다.
<선전(旋轉)>
우리가 환영(幻影)이라고 할 때의 환(幻)자에도 현(玄)자와 비슷한 요(幺)자가 들어가는데, 이 또한 비슷한 개념입니다. 사람의 앞에서 무언가를 빙빙 돌리거나 방울을 왔다 갔다 흔들면서 시야를 어지럽게 하고 넋을 잃게 만드는 것이죠.
4) 결합
그런데 이렇게 실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꼬는 것은 중앙에서 묶는다는 의미로도 이어지지만, 무언가가 안으로 돌리면서 들어간다는 이미지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중국 학자인 왕소순도 선전(旋轉)의 선(旋)자에 빙빙 돌리면서 진입하는 선전진입(旋轉進入)의 함축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마치 오늘날에 목재에 드라이버로 나사를 돌리면서 안으로 넣는 것과도 같죠. 이렇게 무언가를 돌려서 안으로 넣는 것이 오늘날에는 좀 더 편리한 공구로 만들어져 나오긴 하지만 고대에도 없었던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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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어서 결합을 하건, 안으로 돌리면서 넣어서 결합을 하건 이러한 현(玄)자의 이미지는 최종적으로는 이쪽과 저쪽을 중앙에서 결합시킨다는 이미지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현(玄)자가 이쪽과 저쪽, 음(陰)과 양(陽)을 결합시키는 것은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음(陰)과 양(陽)의 결합은 여성과 남성의 결합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왕과 신하의 결합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현(玄)자가 지닌 남성과 여성, 왕과 신하의 결합에 이미지는 그 모양이 약간 변형된 아래와 같은 글자로 나타납니다.
위에 글자는 후대로 가면서 점점 아래와 같은 모양으로 변형되게 됩니다.
이 글자는 '돌아올 귀(歸)', '스승 사(師)'자 등의 글자에 좌측에 오는 글자입니다. 이 글자가 음(陰)과 양(陽),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여성이 시집가는 것을 의미하는 귀(歸)자에도 이 글자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귀(歸)자는 여성이 시집가는 것 외에 “돌아가다”라는 뜻도 있는데, 왜 그러한 의미가 나오는지는 설명이 길어지므로 나중에 십이지(十二地)의 글자들을 설명하면서 다루도록 할 것입니다.
위에 글자는 남성과 여성의 결합 외에도 왕과 신하의 연결, 혹은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연결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군사를 의미하는 사(師)자에도 여러 무리를 이끄는 장수, 혹은 왕의 명을 받은 장수라는 의미에서 위에 글자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자와 무리들의 결합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반영될 수도 있으므로 사(師)자가 여러 제자를 이끄는 스승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玄)자에서 위 아래로 나뉜 물방울 모양은 사실 정(丁)자의 갑골문에서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정(丁)자 2개가 중앙에서 만나서 꼬인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죠. 물론 본래는 실이 꼬인 모양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정(丁)자 두 개가 연결된 것으로 봐도 됩니다. 실제로 현(玄)자나 요(幺)자는 춘추시대로 가면서 점차 아래와 같이 정(丁)자의 갑골문 2개가 서로 연결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현(玄)과 요(幺)의 소전체>
진(秦)나라때 만들어진 소전체 글자에서 현(玄)과 요(幺)자에 있는 네모 비슷한 동그라미 모양은 정(丁)의 갑골문과 금문 형태이고, 정(丁)자의 소전체는 오늘날의 정(丁)자와 가까운 형태로 변화가 되긴 하지만, 그 보다 이전인 춘추시대의 금문(金文)들을 보면 아직 정(丁)자의 모양이 동그라미 혹은 네모의 모양이었고, 현(玄)자의 모양도 소전체와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정(丁)자는 설명하려면 매우 많은 글자들이 예를 들어서 나와야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결론만 언급하고 나중에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정(丁)자는 경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경계란 무언가 하나의 순환이 끝나는 지점이기도 하죠. 그래서 하나의 순환이 끝나고 또 다른 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 서로 묶여서 연결되는 것을 정(丁)자 2개가 묶이는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5) 시작과 종말
그런데 현(玄)자나 요(幺)자에서 상하의 두 개의 순환이 만나는 지점은 작은 점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는 하나의 순환이 끝나고 다른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전 순환의 입장에서는 종말이지만 새로운 순환의 입장에서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어둠이 깔리는 밤은 어제를 기준으로 보면 종말이지만 내일을 기준으로 보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새벽이기도 합니다. 상(商)나라의 멸망은 주(周)나라의 시작이기도 하죠. 이러한 종말과 시작의 이미지는 사실 현(玄)자와 요(幺)자에 다 있는 것이지만, 그 의미를 서로 나누어 가져서 종말의 이미지는 주로 현(玄)자가 가지고, 시작의 이미지는 요(幺)자가 가지게 됩니다. 물론 주역의 관점에서 시작과 종말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므로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대체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후한시대의 한자해설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요(幺)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幺, 小也. 象子初生之形
요(幺)는 작은 것이다.
자식이 처음 생하는 모양을 본 딴 것이다.
이 해석에서 자식이 처음 생(生)한다는 것이 곧 ‘시작’의 이미지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주역(周易)의 중지곤(重地坤)괘의 마지막 여섯 번째 효의 내용은 상(商)나라와 주(周)나라가 왕위를 놓고 싸우는 상황을 두 마리의 용이 싸우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 피가 현황(玄璜)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용전우야 기혈현황(龍戰于野 其血玄黃)
이는 이전 왕조를 상징하는 용(龍)의 피는 검은색이고, 이 전쟁에서 이겨서 새로 들어설 왕조를 상징하는 용(龍)의 피는 황색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검은 색인 현(玄)은 종말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6) 무한대
현(玄)과 요(幺)는 종말과 시작 외에 또 다른 상반되는 이미지를 서로 공유하다가 분리됩니다. 그것은 무한히 큰 것과 무한히 작은 것이라는 개념입니다. 먼저 현(玄)자에 대해서 설문해자에서 해석한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玄, 幽遠也. 黑而有赤色者爲玄. 象幽而入覆之也
현(玄)은 아득하고 먼 것이다.
흑색이면서 적색을 띤 것이 현(玄)이다.
멀리 들어가서 덮은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문장에서 흑색이면서 적색을 띤 것이란 개념은 나중에 괘상과 함께 설명하도록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원(幽遠)이란 개념인데 유(幽)는 아득하게 멀리 멀어져서 잘 안 보이는 것이고 원(遠)도 멀다는 뜻입니다. 즉, 설문해자에서는 현(玄)이 검다는 것이 너무 멀리 떠나가서 잘 안 보인다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무언가를 덮어서 안을 볼 수 없다는 의미로도 반영되고 있죠. 그러면 지금까지 현(玄)이 검다는 의미가 생기는 배경은 모두 세 가지가 나오는데요.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 밖에서 닫아 잠가서 안이 보이지 않는다.
② 빙빙 돌려서 어지러워서 잘 볼 수가 없다.
③ 너무 멀리 떨어져서 작은 점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이미지는 모두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현(玄)자에는 이 세 가지 의미가 모두 다 반영되어 있습니다. 모든 유한한 존재는 그것이 무한대에 가깝게 멀리 떠나가면 나에게는 하나의 작은 점처럼 작아져 보이기 마련입니다. 고로 무한대에 가깝게 크다는 개념은 곧 무한대에 가깝도록 작다는 개념과 연결이 됩니다. 또한 무한대에 가깝게 멀리 떠나가는 것은 주역의 관점에서는 곧 소멸이고 죽음이며 종말입니다.
그런데 앞서 현(玄)자나 요(幺)자에서 두 개의 순환이 서로 중앙에서 엮이고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면서 하나의 종말이 다른 하나의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개념이 있었듯이 이러한 종말은 곧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무한대에 가깝게 멀리 가면서 작아져 보이다가 어느 시점부터 종말로 간주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말한 무한대에 가까운 경계지점은 실제와 개념, 물질과 정보, 삶과 죽음이 서로 만나는 짙은 안개와 같은 신비로운 경계입니다.
이렇듯 무한대에 가깝도록 큰 것과 무한대에 가깝도록 작은 것이 서로 이어져 있지만, 이것도 현(玄)자와 요(幺)자가 나누어서 그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종말의 의미에 더 가까운 현(玄)자는 무한에 가깝도록 큰 것의 의미를 위주로 하고, 시작의 의미에 더 가까운 요(幺)자는 무한에 가깝도록 작은 것의 의미를 위주로 합니다. 이것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현(玄)과 건(乾)의 이미지 및 괘상과 연관지어서 건(乾)의 의미를 파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영상 강의 중에는 본 글에서 빠진 내용도 있고 동영상 강의에 내용을 본 글에서 약간 보충한 부분도 있으니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동영상 강의도 들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 2017. 9 Joongh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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