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갑골문

간지(干支)의 의미 - Ⅱ. 태초력(太初曆)과 역원(曆元)의 변천과정

이칭맨 2017. 12. 1. 17:17


<하남성박물관 천정에 천문도(天文圖)



1. 역원(曆元)의 문제


우리는 한 해를 부를 때 을미년(乙未年), 갑오년(甲午年) 등과 같은 간지(干支)를 이용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렇게 간지(干支)로 년월일시(年月日時)를 기록하는 기준 시작점인 역원(曆元)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부터 무슨 근거로 육십갑자(六十甲子)를 붙여 나아가기 시작했는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역원(曆元)의 문제는 두 가지 문제로 나뉠 수 있는데, 어느 시기를 어떠한 근거로 역원(曆元)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와, 그 시점을 간지(干支)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또 그 시기를 정하고 해당 시점을 간지(干支)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의 문제는 그 기준을 나라의 개국이나 왕의 등극(登極)과 같은 역사적인 중요 사건을 중심으로 보는지, 아니면 순수하게 천문학적인 자료만을 바탕으로 보는지의 문제로 나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실제 역원(曆元)을 정하는 과정에서 고려가 되었던 요소들이고 앞으로 소개되어 나올 것입니다.


사실 주역(周易)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역원(曆元)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역원(曆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만일 역원(曆元)이 잘못된다면 이것을 활용한 학술 분야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생년월일의 간지(干支)를 바탕으로 하는 사주(四柱)가 그러한 경우입니다. 사실 주역(周易)은 사주와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사주(四柱)는 생년월일의 간지(干支)를 사용하지만, 주역(周易)이 만들어질 당시까지도 천간(天干)은 일(日)을 기록하는 데만 사용했지 년(年)을 기록하는 데는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역(周易)의 효사 중에 갑일(甲日), 경일(庚日), 기일(己日)과 같은 천간(天干)의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고 년(年)이나 월(月)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월(月)의 경우는 팔월(八月)이라는 단어처럼 숫자로 표시한 것이 있을 뿐입니다. 주역(周易)의 입장에서 천간(天干)을 공부하는 의미는 주역(周易)의 철학과 천간(天干)의 안에 담긴 철학적 의미가 상통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을 통해 주역(周易) 내에 녹아있는 철학적 개념들이 상대(商代)부터 있던 개념들이 발전되어 온 것이란 것을 밝히는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사주(四柱)를 정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사주(四柱)만 비판하면 되는데 사주(四柱)를 비판하면서 간지(干支)를 비판하고 오행(五行)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입니다.  

 

2. 역법(曆法)의 변천과정


본래 한(漢)나라 이전의 전국시대 및 진(秦)나라에서 사용하던 역법(曆法)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한서ㆍ예문지(漢書ㆍ藝文志)》에서는 고육력(古六曆)이라고 해서 황제력(皇帝曆), 전욱력(顓頊曆), 하력(夏曆), 은력(殷曆), 주력(周曆), 노력(魯曆)의 여섯 가지의 역법(曆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의 역원(曆元)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역원(曆元)을 정하는 기준을 발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미동(陳美東)의 《중국고대천문학사상(中國古代天文學思想)》에서 정리한 고대의 역원(曆元)에 대한 내용을 인용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서진(西晉)시대 사마표(司馬彪)의 《속한서ㆍ율력지하(續漢書ㆍ律曆志下)》에서는 “황제(黃帝)가 역(曆)을 만들 때 역원(曆元)은 신묘(辛卯)에서 시작되었고, 전욱(顓頊)은 을묘(乙卯), 우(虞)는 무오(戊午), 하(夏)는 병인(丙寅), 은(殷)은 갑인(甲寅), 주(周)는 정사(丁巳), 노(魯)는 경자(庚子)를 사용하였다.”고 나온다. 이들은 대략 전국시대에 사용된 각종 역법(曆法)이 취한 역원(曆元)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묘(辛卯), 을묘(乙卯) 등은 각 역법의 역원(曆元)이 되는 해(年)의 간지(干支)인데 (전국시대에는 아직 간지기년(干支紀年)을 채용하지 않았으므로 이 간지(干支) 표시는 한대(漢代) 사람들이 추산해서 나중에 첨가한 것이다.) 이는 1년의 동지(혹은 입춘), 11월(혹은 正月)의 평삭(平朔)이 야반(夜半) 혹은 인시(寅時)에 딱 일치하게 와서 기(氣), 삭(朔), 윤(閏) 등의 추산(推算)이 공동으로 일어나는 지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역원(曆元)의 문제는 어느 시기를 어떠한 근거로 역원(曆元)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와, 그 시점을 간지(干支)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위에 진미동(陳美東)의 서적에서 인용한 글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대체로 역원(曆元)을 정하는 기준은 고대에도 나름대로 공통되게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근거는 알 수 없습니다. 위 문장에서 역원(曆元)이란 하(夏), 은(殷), 주(周) 등의 왕조가 새로운 역법(曆法)을 사용하기 시작한 기준점을 말하는 것이지 본래 황제(黃帝)나 그 전후에 역법(曆法)이란 것을 처음으로 만든 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시대별로 역원(曆元)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대(秦代)에는 이 중에서 전욱력(顓頊曆)을 사용하였고, 한대(漢代) 초기에도 계속 진대(秦代)의 전욱력(顓頊曆)을 사용했으나, 역법과 실제 천문현상과의 차이가 점차로 커지게 되자 태사령(太史令) 사마천(司馬遷)의 주관 하에 등평(鄧平), 낙하굉(落下閎) 등의 인물들이 새로운 역법을 만들게 되는데 이를 태초력(太初曆)이라고 부릅니다. 태초(太初)란 한무제(漢武帝)가 사용한 11개의 연호(年號)들 중 여섯 번째 연호인 원봉(元封)의 다음에 오는 일곱 번째 연호(年號)입니다. 태초력(太初曆)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원봉(元封) 7년이자, 태초원년(太初元年)인 기원전 104년입니다. 후에 이것을 유흠(劉歆)이 개정해서 삼통력(三統曆)으로 내놓게 되는데, 이때 마련된 역원(曆元)의 이론에 따른 기원전 104년의 정축(丁丑)년이 현재까지도 년(年)을 표시하는 간지(干支)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3. 태초력(太初曆), 삼통력(三統曆)


태초력(太初曆)은 그 원래 모습이 전해지는 바가 별로 없고, 이후에 유흠(劉歆)이 만든 삼통력(三統曆)에서 그 바탕이 나타나는데 그 내용은 《한서ㆍ율력지(漢書ㆍ律曆志)》등에 자세히 나옵니다. 삼통력(三統曆)은 앞서 소개한 것처럼 태초력(太初曆)을 기반으로 약간 수정만 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본래 태초력(太初曆)과 삼통력(三統曆)이 많이 다른데, 《한서(漢書)》를 지은 반고(班固)가 오류로 인해 삼통력(三統曆)을 태초력(太初曆)으로 여긴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사기ㆍ역서(史記ㆍ曆書)》의 역술갑자편(曆術甲子編)에 나오는 태초력(太初曆)의 내용이 1년을 365와 1/4로 보는 사분력(四分曆)이므로, 81분력인 삼통력(三統曆)과 수치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


1) 초기 역원(曆元) 갑인년(甲寅年)


그런데 이 태초력(太初曆)과 삼통력(三統曆)의 역원(曆元)을 정하는 과정이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 태초원년(太初元年)인 기원전 104년의 간지(干支)를 갑인년(甲寅年)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태초원년(太初元年)의 세명(歲名)을 갑인(甲寅)으로 한 것은 《한서ㆍ율력지상(漢書ㆍ律曆志上)》에 보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이에 이전 역(曆)의 상원태초(上元泰初) 4,617세(歲)에서 원봉(元封) 7년에 이르기까지 ‘알봉 섭제격(閼逢 攝提格)’의 세(歲)를 다시 얻었다. (乃以前曆上元泰初 四千六百一十七歲 至於元封七年 復得閼逢攝提格之歲)』


위에 글에서 나오는 알봉(閼蓬), 섭제격(攝提格)과 같은 단어는 간지(干支)를 부르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고갑자(古甲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세성(歲星, 오늘날의 목성)의 공전주기가 12년에 가까운 것에 착안하여 세성(歲星)이 순환 과정에서 머무는 자리에 간지(干支)의 갑자(甲子) 표시 대신에 사용한 용어입니다. 알봉(閼蓬)은 천간(天干)의 갑(甲)에 해당되고, 섭제격(攝提格)은 지지(地支)의 인(寅)에 해당되므로 알봉섭제격(閼蓬攝提格)은 갑인(甲寅)에 해당됩니다. 알봉(閼蓬), 섭제격(攝提格)과 같은 단어의 이름이 고갑자(古甲子)라고 붙어 있으므로 간지(干支)보다 더 오래전에 쓰이던 것이라는 글들도 있는데, 실제로 문헌상에서는 상대(商代)의 갑골복사에서도 나오는 간지(干支)가 더 오래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다만 간지(干支)는 본래 일(日)을 표시하는 데만 사용했고, 해를 표시하는 기년(紀年)에는 간지(干支)보다는 고갑자(古甲子)가 더 먼저 쓰였다가 나중에 간지(干支)를 사용했으므로 기년법(紀年法)에서만은 고갑자(古甲子)가 더 먼저 사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는 합니다.


태초원년(太初元年)을 갑인(甲寅)으로 한 것은 앞서 소개한 고육력(古六曆) 중 은력(殷曆)에서 갑인(甲寅)년을 역원(曆元)으로 삼은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태초력(太初曆)이 만들어지기 전에 살았던 유안(劉安)이 쓴 《회남자ㆍ천문훈(淮南子ㆍ天文訓)》에서도 “太陰元始建於甲寅(태음의 역원은 갑인에서 시작된다)”고 하여 갑인년(甲寅年)을 역원(曆元)으로 삼는 주장이 나온 바 있고, 사마천(司馬遷)도 이를 계승하여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태초력(太初曆)에서 역(曆)의 상원태초(上元泰初)로 잡은 4,617년은 육십갑자의 순환주기인 60으로 나누어서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므로 4,617년 전이 갑인년(甲寅年)이면 기원전 104년은 갑인년(甲寅年)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알봉섭제격(閼蓬攝提格)의 세(歲)를 ‘다시’ 얻었다는 말은 많은 논란이 되어왔고 몇 가지 해석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장배유(張培瑜) 등이 저술한 《중국고대역법(中國古代曆法)》에서는 태초력(太初曆)으로 개력(改曆)할 당시에 총 7차에 걸친 조서(詔書)가 나왔는데, 그 중에 처음 내린 조서에서는 기존에 은력(殷曆)에서 사용하던 갑인년(甲寅年)을 시작으로 삼았다가 나중에 역법(曆法)을 만들어 가면서 측정한 값에 따라 병자년(丙子)으로 바꾼 것일 수도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2 
 
복잡한 천문현상과의 연관성이나 점성술과의 연관성을 떠나서 시초(始初)라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오행(五行)의 속성 중 목(木)에 해당하는 갑(甲)과 인(寅)을 그 시작점으로 잡는다는 의미는 있을 수 있지만, 실제 천문현상과 역법(曆法)의 일치를 추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중에 이것은 유흠(劉歆)이란 학자에 의해 수정되게 됩니다. 그러면 위에 《한서ㆍ율력지상(漢書ㆍ律曆志上)》의 인용문에서 상원태초(上元泰初) 4,617세(歲)는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2) 갑자야반삭단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


삼통(三統)이란 야반삭단동지(夜半朔旦冬至)가 갑자(甲子)일에 들어오는 주기를 말합니다. 야반(夜半)이란 하루의 시작인 자정(0시)이고, 삭단(朔旦)은 한 달의 시작인 초하루이며, 동지(冬至)란 고대인들이 바라본 한 해의 시작 달입니다. 이렇게 년(年), 월(月), 일(日), 시(時)의 시작이 겹치는 것이 갑자일(甲子日)에 들어오는 것이 갑자야반삭단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이며, 이것이 고대인들이 역원(曆元)을 산출하는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앞서 상대(商代) 사람들이 천체 운동이 실제로 60이라는 순환주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60이란 숫자체계를 유지한 것은 60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상징성을 유지한 것이고, 이러한 60의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실제 천체의 운동과 융합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나고 차이가 생기는 과정을 변하지 않는 기본 체계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변과 변화, 정(靜)과 동(動)의 결합이고 변화 속에 내재한 규칙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융합과 조화의 방법 중 하나가 이렇게 점점 어긋나는 각자의 주기들이 다시 하나로 합치는 커다란 주기를 계산하는 것이었고, 그러한 노력이 발전되어 삼통(三統)의 개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는 10천간(天干)과 12지지(地支)의 결합으로 60이라는 더 큰 주기가 나오게 되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삼통(三統)이 4,617년이 나오는지 보도록 합시다.


삼통력(三統曆)은 다른 말로 팔십일분율력(八十一分律曆)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자연수로 떨어지지 않는 분수를 계산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분모를 81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81이란 수는 9 × 9의 구구단에서 나온 숫자인데, 고대인들이 율력(律曆)이라고 해서 만물의 단위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격자판과 같은 것입니다. 《한서ㆍ율력지(漢書ㆍ律曆志)》에서는 이 81이란 수를 ‘일법(日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주 정확한 수치까지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했다면 모를까 당시에 분모를 81로 하는 수치까지라도 제대로 측정만 할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① 1장(章) 19년. 삭단동지(朔旦冬至)


삼통력(三統曆)에서는 하루를 81등분해서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1달을 29와 43/81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년(年)과 월(月)이 만나는 회합주기의 기준으로 숫자 19를 사용하는데, 이 19에서 19년 7윤년법이 나옵니다. 《한서ㆍ율력지하(漢書ㆍ律曆志下)》에선 “하늘과 땅의 종수(終數, 끝나는 수)를 합해서 윤법(閏法)을 얻는다.(合天地終數, 得閏法)”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수는 홀수를 말하는데 종수(終數)란 1부터 10까지 숫자 중 가장 큰 홀수인 9이고, 땅의 수는 짝수를 말하는데 여기서 종수(終數)는 1부터 10까지 숫자 중 가장 큰 짝수인 10을 말합니다. 삼통력(三統曆)에서는 19라는 수를 이렇게 하늘과 땅의 종수(終數)를 합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삼통력(三統曆) 이전 춘추시대부터 사용하던 숫자이고, 서양에서도 메톤주기라는 이름으로 사용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뒤에 나올 사분력(四分曆)에서는 이 19라는 수가 직접 그림자의 변화를 측량해서 얻은 값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이전에 춘추시대에도 과연 측량을 통해 얻은 결론에 하늘과 땅의 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입힌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하늘과 땅의 수에서 출발한 것이 맞아 떨어진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측량을 통해 얻은 수치에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을 결합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삼통력(三統曆)에서 1년의 날수를 따질 때에는 분모를 81에 19를 곱한 1539로 보고, 1년을 365와 385/1539일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19년은 19 × 365와 385/1539이 되고 이것을 개월 수로 환산하려면 이것을 삭망월 일수인 29와 43/81으로 나눠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값은 235개월이 되는데, 이것은 12개월을 19년으로 곱한 228에서 7을 더해야 하는 수이므로 19년에 7번의 윤달을 끼워 넣는 것이고 이것이 ‘19년 7윤법’이 되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19년 7윤년법’은 삼통력(三統曆) 이전부터 있었던 방법이고, 서양에서도 BC 433년경에 그리스에서 메톤주기라고 사용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19년이 지나면 부족했던 날수를 윤달이 다 채우고, 다시 한 달의 시작인 삭단(朔旦)과 한해의 시작인 동지(冬至)가 일치하는 삭단동지(朔旦冬至)가 같은 날 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삭망월의 일수인 29와 43/81 또한 그 구하는 과정이 그다지 과학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아마도 이 또한 앞서 윤법(閏法) 19년과 마찬가지로 실측해서 얻은 값에 가까운 역(易)의 이론적 수치를 대입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구하는 방법은 먼저 한대(漢代) 이후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대연지수(大淵之數) 50에서 도(道)에 해당되는 1을 뺀 49를 바탕으로 춘추(春秋)에 해당하는 수인 2. 삼통(三通)에 해당하는 수인 3, 사시(四時)에 해당하는 수인 4를 곱하고, 거기에 윤법(閏法)의 수인 19와 도(道)인 1을 더한 값 전부를 다시 2를 곱해서 값을 구합니다. (이 숫자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선 생략합니다.)


( 49 × 2 × 3 × 4 × + 19 + 1 ) × 2 = 2392


여기 나온 개별 숫자들은 한대(漢代)에 주역으로 점을 치는 설시법에 그대로 반영이 되긴 하지만, 왜 이런 공식을 이끌어 냈는지는 확실히 알기 힘듭니다. 이는 아마도 실제로 측량한 삭망월 일수를 바탕으로 역(易)의 이론을 개입시켜서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여기서 나온 2392를 일법(日法) 81로 나누면 29와 43/81일이 나옵니다. 이는 소수로 표현하면 29.53086일인데 실제 현대의 삭망월 일수인 29.530588일과 비슷한 값이 나옵니다. 이는 아마도 실제로 측량한 삭망월 일수를 바탕으로 역(易)의 이론을 개입시켜서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② 1통(統), 야반삭단동지(夜半朔旦冬至)


그 다음 1장(章) 19년에다 다시 81을 곱하면 1,539년이 되는데 이는 삭단동지(朔旦冬至)가 같은 날 자정에 오는 야반삭단동지(夜半朔旦冬至)의 주기가 되고, 이를 1통(統)이라고 불렀습니다. 81을 곱한 이유는 앞서 삭단동지(朔旦冬至)가 하루 중 같은 시각인 야반(夜半)에 오는 날을 찾기 위해서는 삭망월인 29와 43/81의 분모가 없어져야 날 수가 자연수로 채워지면서 달의 시작과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1통(統)은 81장(章)이 되는 것입니다.


③ 1원(元), 갑자야반삭단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


다음으로 이 1통(統)이 세 번 반복되면 4,617년이 되는데(1,539 × 3), 이것을 1원(元)이라고 불렀습니다. 1원(元)은 1,686,360일(日)이 되고 이는 60으로 나누어서 떨어지므로 갑자일(甲子日)에서 갑자일(甲子日)로 순환되게 됩니다. 즉, 1원(元)은 삼통(三統)이 되는 것이고, 이는 야반삭단동지(夜半朔旦冬至)가 같은 날 오는 것이 갑자(甲子)일에 오게 되는 갑자야반삭단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의 주기가 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앞서 《한서ㆍ율력지상(漢書ㆍ律曆志上)》의 상원태초(上元泰初) 4,617세(歲)가 나온 것이고, 이는 갑자야반삭단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의 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태초력(太初曆)이 시행된 기원전 104년 이전 해 11월에 갑자야반삭단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가 들었다고 합니다.


3) 갑인년(甲寅年)에서 병자년(丙子年)으로


이렇게 갑자야반삭단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만 가지고 논한다면 이때를 목(木)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갑인년(甲寅年)으로 한다고 해서 당시로서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마천(司馬遷)도 이때를 갑인년(甲寅年)으로 본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기원전 104년 이전까지 사용했던 세성(歲星, 목성을 말함)의 운행을 기준으로 한 기년법(紀年法)에 의하면 당시는 병자년(丙子年)이 되었으므로, 갑인년(甲寅年)과는 어긋나게 됩니다. 즉 갑자야반삭단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외에 세성(歲星)의 운행까지 고려한 역법(曆法)을 만들고자 한다면 기원전 104년은 갑인년(甲寅年)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세성(歲星)의 운행을 기준으로 한 기년법(紀年法)은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 혹은 태세기년법(太歲紀年法)이라고 부르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과 태세기년법(太歲紀年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4)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


고대인들은 목성을 세성(歲星)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목성의 공전주기가 거의 12년에 가까워서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지지(地支)의 12라는 주기와 잘 들어맞고, 천구상의 황도(黃道) 부근을 12등분해서 생기는 구역에 있는 별자리들을 참고하기에도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이러한 관점에서 목성을 세성(歲星)이라고 불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늦어도 상대(商代) 말기에는 목성의 공전주기를 바탕으로 세성(歲星)이라고 부른 관점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歲)의 갑골문>3


세(歲)자의 갑골문은 위에 보듯이 도끼와 같은 무기를 나타내는 월(戉)자의 상하로 발자국이나 특수 표시가 온 모양입니다. 고대인들은 중심이나 경계의 의미가 담긴 글자에는 끈으로 묶는 이미지나 무기의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중심이란 것도 사실 이쪽과 저쪽의 경계이고, 경계란 것도 이쪽과 저쪽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무기의 이미지는 국경을 지키는 이미지가 있으므로 갑골문자에 나오는 무기들은 종종 경계의 이미지로 봐야 합니다. 세(歲)자에 나타나는 무기도 이러한 경계의 의미가 있는데, 거기에 발자국이나 특수부호가 상하로 오는 것은 이러한 경계를 뛰어 넘어 간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월(戉)자에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는 주(走)자가 붙은 월(越)자는 ‘넘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商代) 갑골복사에서 세(歲)자가 년(年)과 관련된 의미로도 쓰이는 것을 보면 이 경계는 공간적인 경계 외에 시간적인 경계의 의미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상(商)을 정벌하고 나서 만든 청동기인 리궤(利簋)에도 세(歲)자가 나오는데, 여기서 세(歲)자는 해석이 분분하긴 하지만 이 또한 세성(歲星)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러한 세성(歲星)의 공전주기가 12년에 가까우므로 천구상의 황도(黃道)를 12등분해서 각각의 영역을 차(次)라고 불렀으며 각각의 차(次)에 성기(星紀), 현효(玄枵), 추자(諏訾), 강루(降婁), 대량(大梁), 실침(實沈), 순수(鶉首), 순화(鶉火), 순미(鶉尾), 수성(壽星), 대화(大火), 석목(析木)의 이름을 붙이고, 그 해의 이름을 말할 때에 “세재순화(歲在鶉火, 세가 순화에 있다)”와 같은 식으로 말했습니다. 《국어(國語)》에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을 정벌하러 가는 시기를 말하는 대목에서도 “옛날에 무왕이 상(商)을 정복할 때, 세(歲)가 순화(鶉火)에 있었다.(昔武王克商,岁在鹑火)”라고 나옵니다. 이러한 표현은 《좌전(左傳)》에도 종종 나오는데, 가령 《좌전ㆍ양공28년(左傳ㆍ襄公二十八年)》에 보면 “세(歲)가 성기(星紀)에 있어야 하는데 이미 지나서 현효에 가있다.(歲在星紀,而淫于玄枵)”와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5) 태세기년법(太歲紀年法)


그런데, 이렇게 세성(歲星)이 있어야 할 위치와 실제 관측 위치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앞서 예를 든 《좌전ㆍ양공28년(左傳ㆍ襄公二十八年)》외에도 《좌전(左傳)》에 종종 나옵니다.  이는 사실 목성의 공전주기가 실제로는 12년에 조금 못 미치는 11.86년이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고로 사람들은 세성(歲星)과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가상의 행성을 만들어서 태세(太歲)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 순환영역을 똑같이 12차(次)로 나눈 뒤, 각각의 차(次)에 고갑자(古甲子)나 갑자(甲子)로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를 태세기년법(太歲紀年法)이라고 부릅니다. 세성(歲星)의 실제 위치를 따르자면 기존에 순서와 맞지 않고 그 규칙을 아직 모르니, 해마다 기존의 십이지(十二支)의 순서를 따라서 도는 가상의 행성을 만들어 규칙에 맞게 배속해 나아가는 방법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본래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은 천구를 12등분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이것을 변형한 태세기년법(太歲紀年法)도 12를 기준으로 순환되는 지지(地支)가 위주가 되고, 본래는 10을 기준으로 순환하는 천간(天干)이 개입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앞서 인용한 《한서ㆍ율력지상(漢書ㆍ律曆志上)》에서 원봉(元封) 7년에 “태세가 자(子)에 있었다.(太歲在子)”고 하고 있지 태세(太歲)가 병자(丙子)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그런 식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사실 이때부터 이미 세성(歲星)과 기년법(紀年法)과의 관계는 멀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멀어지기 시작한 세성(歲星)과 기년(紀年) 방식의 관계를 다시 이어놓은 사람이 바로 태초력(太初曆)을 보완해서 삼통력(三統曆)을 만든 유흠(劉歆)입니다.


6) 초진법(超辰法)


유흠(劉歆)은 《좌전(左傳)》에 나오는 세성(歲星)의 위치가 이론과 차이가 나는 부분을 연구하고, 주역(周易)에 나오는 상수(象數) 이론을 적용하여 세성(歲星)의 공전주기가 12년에 조금 못 미쳐서,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 이동하게 되어 144년이 되면 1차(次)를 더 이동하게 된다고 하였고 이를 초진(超辰)이라 불렀습니다. 사실 유흠(劉歆)이 세성(歲星)의 공전주기를 알아내기 위해 주역(周易)의 이론을 이용한 것은 앞서 삭망월의 일수를 구하는 것처럼 그다지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 방법은 《한서ㆍ율력지하(漢書ㆍ律曆志下)》에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목(木)과 금(金)을 서로 곱하면 12가 되는데 이것이 세성(歲星)의 작은 주기이다. 작은 주기에다가 곤괘(坤卦)의 책수(策數, 144)를 곱하면 1,728이 되는데, 이것이 세성(歲星)의 세수(歲數)이다. (木金相乘為十二, 是為歲星小周. 小周乘巛策, 為千七百二十八, 是為歲星歲數)』


오행(五行)을 숫자에 배속하면 수(水)는 1, 화(火)는 2. 목(木)은 3, 금(金)은 4, 토(土)는 5에 해당이 됩니다. 유흠(劉歆)은 목성은 목(木)의 정기(精氣)를 받은 것이고, 금성은 금(金)의 정기(精氣)를 받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목(木)과 금(金)을 곱해서 12가 된다고 한 것입니다. 巛은 전국시대에 사용하던 곤(坤)괘의 이름입니다. 곤괘(坤卦)의 책수란 144를 말합니다. 《주역ㆍ계사전(周易ㆍ繫辭傳)》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건(乾)의 책수(策數)는 216이고, 곤(坤)의 책수는 144이며, 이 둘의 합은 360으로 1년의 날 수에 해당된다.』


건(乾)과 곤(坤)의 책수를 구하는 방법은 《한서ㆍ율력지상(漢書ㆍ律曆志上)》에 나오는데 구지 여기선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앞서 세성(歲星)의 주기를 구하는데 목(木)의 숫자에 금(金)의 숫자를 곱하는 이유는 《한서ㆍ율력지상(漢書ㆍ律曆志上)》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천(天)은 일(一)로 생수(生水)하고, 지(地)는 이(二)로 생화(生火)하고, 천(天)은 삼(三)으로 생목(生木)하고, 지(地)는 사(四)로 생금(生金)하고, 천(天)은 오(五)로 생토(生土)한다. 오행 상극관계를 곱해서 작은 주기를 만들고, 여기에 건곤(乾坤)의 책수(策數)를 곱하면 큰 주기를 이룬다. (天以一生水,地以二生火,天以三生木,地以四生金,天以五生土。五勝相乘,以生小周,以乘乾坤之策,而成大周)』


이에 대해선 음(陰)과 양(陽)이 서로 같은 부류끼리 어울리면서도 서로 교착(交錯, 뒤섞임)하면서 전체를 이루어 간다는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는데(陰陽比類, 交錯相成),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존재가 교착(交錯)하는 것을 서로 곱한다는 개념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오행(五行)과 상극(相克)의 개념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이러한 상극(相克)관계를 곱하는 것이 둘을 뒤섞는 것이라는 개념은 두 수의 공배수를 구하는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10간과 12지를 결합할 때 최소공배수 60을 단위로 하게 되는 것과 같은 개념이고 앞서 분모를 없애서 자연수를 얻는 방식과도 통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오행(五行)의 숫자를 행성에 그대로 대입시킨 것은 너무 무리하게 확장해 나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오행(五行)의 잘못이 아니라 유흠(劉歆)의 시도가 무리했던 것입니다. 앞에 나온 윤법(閏法) 19나 삭망월 일수인 29와 43/81 같은 경우는 실제 측량한 값과 비교해서 만들어낸 것이라 숫자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목성의 공전주기와 같이 오랜 기간 측량이 필요한 경우 만일 이와 같이 이론만으로 접근할 경우는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상수(象數)적인 접근은 제가 주역(周易)을 공부하는 방향과는 다르지만, 역사 내용을 다루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순 없습니다.


이상의 내용만 보면 유흠(劉歆)은 지나치게 공상적인 인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천체의 이동과 변화를 측정하는 것은 상당히 오랜 기간을 기다리면서 측정값을 쌓아야 하는 작업인데 지금 와서 얻은 문제를 가지고 오랜 시간을 그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당시에 있는 우주론을 끌어와서 일단 이론을 세워두고 그것과 과거의 자료들을 비교해서 검증하는 정도의 작업이 그 당시로선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론을 세워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자료와 비교해서 검증하는 것입니다. 유흠(劉歆)이 비록 이러한 이론에 따라 목성의 공전주기를 구하긴 했지만, 그것이 단지 이론으로만 끝난 것은 아니고, 《좌전(左傳)》에 나온 오차들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진미동(陳美東)의 《중국고대천문학사상(中國古代天文學思想)》에 의하면 《좌전(左傳)》에 나온 세성의 위치가 모두 실제위치와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4 고로 비록 유흠(劉歆)의 결과가 《좌전(左傳)》에 기록과 많은 경우 부합한다 해도, 실제와는 여전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지 역원(曆元)을 설명하는 과정에 소개된 몇 가지 이런 사례들이 있다고 해서 고대인들이 모두 이와 같은 식으로만 천체 현상을 접근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니 측정 수치를 바탕으로 해서 이론과의 결합을 추구한 것인데, 당시 측정이 불가능했던 경우들에는 다소 무리한 적용이 가해진 것입니다. 사실 주역(周易)이 본래 숫자를 다루고 괘(卦)의 표현도 본래는 숫자를 사용해서 표시하긴 했지만 이러한 책수(策數)와 같은 개념이 나오는 것은 한대(漢代) 이후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러한 방식이 주역(周易)이나 오행(五行)의 본래 모습과 얼마나 연관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고로 이 부분은 이정도로 근거자료만 소개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유흠(劉歆)은 세성(歲星)이 144년 지나면 1차 초진(超辰)을 하게 되고, 그것이 12차 초진이 이루어지는 1,728년이면 초진(超辰)이 한 바퀴를 다 돌게 되므로 다시 세성(歲星)이 제자리로 돌아와 해와 만나게 되는 주기가 이루어진다고 본 것입니다. 그럼 이것을 바탕으로 유흠(劉歆)이 삼통력(三統曆)의 역원(曆元)을 구한 방식을 먼저 알아보도록 합시다.


7) 태초원년(太初元年) 및 태극상원(太極上元)


앞서 삼통력(三統曆)에서 1통(統)이 세 번 반복되는 삼통(三統), 즉 1원(元)을 구하는 것까지 다룬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1원(元)은 4,617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1월에 갑자야반합삭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가 든 원봉(元封) 6년의 다음해인 기원전 104년을 태초원년(太初元年)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태초(太初)는 앞서 말했듯이 한무제(漢武帝)의 일곱 번째 연호일 뿐이지 이때부터 세상천지가 시작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유흠(劉歆)은 더 큰 주기를 찾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유흠(劉歆)은 세성(歲星)을 기준으로 하는 기년법(紀年法)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성(歲星)의 초진(超辰)까지 고려한 회합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1원(元)이 31번 반복된 31원(元)의 주기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31 × 4,617이므로 143,127세(歲)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기원전 104년으로부터 과거로 143,127년이 되는 해를 태극상원(太極上元)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실제로 이때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세성(歲星)의 초진까지 고려했을 때 그때가 갑자(甲子)일이면 기원전 104년도 갑자(甲子)일로 나오게 됩니다. 즉 갑자야반삭단동지(甲子夜半朔旦冬至)와 세성(歲星)의 초진(超辰)까지 고려한 회합주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한서ㆍ율력지하(漢書ㆍ律曆志下)》에 보면 이것을 구하는  방법이 나오긴 하는데, 이걸 설명하려면 괜히 복잡해지고 시간도 걸리므로 여기선 조금 더 길지만 단순한 예를 들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BC 143,231년에서부터 떨어진 햇수 구하기


먼저 태극상원(太極上元)을 갑자(甲子)년이라고 가정하고 풀어보도록 합시다. 태극상원(太極上元)은 앞서 말했듯이 BC 104년에서 과거로 143,127년 떨어진 지점입니다. 여기서부터 구하고자 하는 해의 햇수를 구합니다. 여기선 BC 104년 자체의 간지(干支)를 구하고자 하므로 143,127 숫자 자체를 취하면 됩니다.


② 햇수 ÷ 12의 나머지를 취함


143,127을 12로 나누면 일단 초진(超辰) 현상이 없다고 가정한 경우 12지(支)가 몇 번을 돌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143,127 ÷ 12 = 11,927.25입니다. 고로 이는 12지가 자(子)부터 시작해서 11,927번 돌고 다시 자(子)로 돌아온 뒤에 25/100만큼 더 간 것입니다. 25/100은 3/12이므로 12지에서 앞으로 3번 더 지나간 것이 됩니다. 즉, 자(子) 다음의 축(丑), 인(寅), 묘(卯)까지 간 묘(卯)가 세성의 초진이 없을 경우 BC 104년의 지지(地支)에 해당됩니다.


③ 햇수 ÷ 144의 몫을 다시 12로 나누어 나머지를 취함


다음엔 세성의 초진을 고려해 봅시다. 143,127을 144로 나누면 그 동안 몇 번의 초진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143,127 ÷ 144 = 993.9375이므로 초진이 993번 일어나고 거의 1차(次)에 가깝게 더 채워가지만 아직 다 채우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이 993번을 다시 12로 나누면 82.75가 되는데 이는 그 중에 82번이 12차(次)를 다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후한서ㆍ율력지중(後漢書ㆍ律曆志中)》에도 “凡九百九十三超,歲有空行八十二周有奇(993번의 초진(超辰) 후에 세(歲)가 82주(周)를 넘게 뛰어 넘은 것이다.)”라고 나옵니다. 이 82.75에서 자연수 82를 뺀 나머지인 75/100는 9/12와 같습니다. 이는 초진이 다시 처음부터 돌아서 12지(支)의 각 자리를 9칸 더 간 것을 의미합니다. 고로 앞서 2)번의 결과인 묘(卯)에서 앞으로 9번 더 나간 결과를 구하면 세성(歲星)의 초진(超辰)을 고려한 기원전 104년의 지지(地支)가 나오게 됩니다. 묘(卯)에서 앞으로 9번 더 가면 자(子)가 됩니다. 고로 태극상원(太極上元)이 자(子)에서 시작하면 BC 104년도 자(子)가 되고, 축(丑)에서 시작하면 축(丑)이 되는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간(天干)도 이와 같이 구해보면  태극상원(太極上元)이 갑(甲)에서 시작하면 BC 104년도 갑(甲)이 되고, 병(丙)에서 시작하면 병(丙)이 되는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한서ㆍ율력지상(漢書ㆍ律曆志上)》에 문장을 그 뒤에 나오는 문장까지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이전 역(曆)의 상원태초(上元泰初) 4,617세에서 원봉(元封) 7년에 이르기까지 ‘알봉 섭제격(閼逢 攝提格)’의 세(歲)를 다시 얻었다. 11월 갑자일에 삭단동지가 들었는데 일월(日月)이 모두 건성(建星)에 있었고 태세(太歲)는 자(子)에 있었다. (乃以前曆上元泰初 四千六百一十七歲 至於元封七年 復得閼逢攝提格之歲. 中冬十一月 甲子朔旦冬至. 日月在建星 太歲在子)』


즉 원봉(元封) 7년의 전 해인 원봉(元封) 6년(年) 11월 갑자(甲子)일에 삭단동지(朔旦冬至)가 왔고 그 때의 태세(太歲)는 자(子)에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원봉(元封) 7년의 전 해에 왔다는 것은 《한서ㆍ율력지하(漢書ㆍ律曆志下)》에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한력(漢曆) 태초원년, 상원으로부터 143,137년, 전 해 11월에 갑자삭단동지 ...(漢曆太初元年, 距上元十四萬三千一百二十七歲. 前十一月甲子朔旦冬至 ...)』


애초에 세성기년(歲星紀年)이 태세기년(太歲紀年)으로 바뀌면서 세성(歲星)과 기년법(紀年法)의 관계도 멀어져간 듯 했으나, 유흠(劉歆)이 초진(超辰)까지 고려한 주기를 만들어 낸 뒤로는 다시 세성(歲星)의 주기와 기년법(紀年法)이 연관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태세(太歲)는 자(子)에 있었고, 당시의 전후 역법(曆法)을 볼 때 이는 병자(丙子)년에 해당되므로 기원전 104년 태초원년을 병자(丙子)년으로 해서 초진법을 쓰면서 간지(干支)로 해를 기록하는 원칙이 생기게 됩니다.


8) 병자(丙子)에서 정축(丁丑)으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중에는 BC 104년이 병자(丙子)가 아니라 그 다음 순서인 정축(丁丑)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188년 뒤 AD 85년 후한(後漢) 장제(章帝) 원화(元和) 2년 때에 사분력(四分曆)으로 개력(改曆)이 행해지면서부터는 더 이상 초진(超辰)을 고려하지 않게 바뀝니다. 병자(丙子)가 정축(丁丑)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 혹자는 초진법을 써서 정축(丁丑)으로 바뀐 것이라고도 하지만 병자년(丙子年) 자체가 이미 초진법을 고려해서 구한 것이므로 납득할만한 설명이 되지는 못합니다.


《한서ㆍ율력지하(漢書ㆍ律曆志下)》에서는 태초원년에 “세(歲)가 성기(星紀) 무녀(婺女) 6도에 있었으므로, 한지(漢志)에서 세명(歲名)을 곤돈(困敦)이라고 한 것이다.(歲在星紀婺女六度, 故漢志曰歲名困敦)”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성기(星紀)는 축(丑)에 속하고 무녀(婺女)라는 별자리는 대부분 자(子)에 속합니다. 이는 아래 그림을 보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대인들은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黃道) 상에 별자리를 크게 동서남북(東西南北)의 4방위로 나누고 각각의 방위 안에 7개의 별자리를 두어서 총 28개의 별자리를 두고 이를 28수(宿)라 불렀습니다. 위에 그림에서 붉은 화살표 표시한 부분에 28수(宿)중 여(女)라고 불리는 영역이 오는데, 여수(女宿)의 대표 별자리는 무녀(婺女)입니다. 안쪽에 있는 글자들은 28수(宿)의 별자리들을 12차(次)로 나누어서 배속한 것입니다. 이는 앞서 세성기년법을 설명하면서 나온 바 있는 이름들로 성기(星紀), 현효(玄枵), 추자(諏訾) 등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원의 바깥쪽에는 각각의 차(次)에 해당되는 십이지(十二支)가 적혀 있습니다. 보다시피 무녀(婺女)에 해당되는 지지(地支)는 자(子)와 축(丑) 사이입니다. 곤돈(困敦)은 십지이의 자(子)에 해당되므로 《한서ㆍ율력지상(漢書ㆍ律曆志上)》에서도 태초원년에 “태세가 자(子)에 있었다.”라고 한 것과 통합니다. 그런데 무녀(婺女)라는 별자리는 사실은 7도까지는 축(丑)에 해당되는 성기(星紀)에 속하고 8도부터 자(子)에 해당되는 현효(玄枵)에 속합니다. 이는 《한서ㆍ율력지하(漢書ㆍ律曆志下)》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성기(星紀)는 두(斗) 12도에서 시작, 대설(大雪)이다. 중(中)은 견우초(牽牛初), 동지(冬至)이다. 무녀(婺女) 7도에서 끝난다.
현효(玄枵)는 무녀(婺女) 8도에서 시작, 소한(小寒)이다. 중(中)은 위초(危初), 대한(大寒)이다. 위(危) 15도에서 끝난다.
星紀,初斗十二度,大雪。中牽牛初,冬至。終於婺女七度
玄枵,初婺女八度,小寒。中危初,大寒。終於危十五度


무녀(婺女)는 대부분 자(子)에 속하지만 7도까지는 성기(星紀)에 속하므로, 세(歲)가 무녀(婺女) 6도에 있던 시기는 축(丑)이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결국 나중에 축(丑)으로 바꾸지만 초기에 이것을 자(子)로 한 것은 자(子)가 십이지(十二地)의 첫 번째 자리라는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 장배유(張培瑜) 등이 저술한 《중국고대역법(中國古代曆法)》에 나오는 내용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해서 정리한 것입니다.5


앞서 인용한 《한서ㆍ율력지상(漢書ㆍ律曆志上)》에서는 11월에 삭단동지(朔旦冬至)가 들었다고 하고 있는데, 그것이 실제로는 태초원년(太初元年)의 전 해인 원봉(元封) 6년의 11월입니다. 그런데 한(漢)나라는 초기에는 10월을 한해의 시작인 세수(歲首)로 삼았다가 태초력(太初曆)으로 개력(改曆)을 하면서 인월(寅月, 1월)을 한 해의 첫 달인 세수(歲首)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태초원년(太初元年)의 기준을 이전 10월부터로 잡는지, 아니면 새로운 1월부터로 잡는지에 따라 약간의 오차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동지(冬至)가 든 11월을 기준으로 하면 10월, 11월, 1월의 세 개의 기준점이 생겨서 혼돈이 생기게 됩니다. 인월(寅月)을 기준으로 세(歲)가 바뀐다고 보면, 이전에 11월, 12월 두 달만 병자(丙子)로 보고 이후 BC 104년 1월부터는 정축(丁丑)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이전의 두 달과 뒤에 오는 1년을 다 합쳐서 병자(丙子)로 보고 그 뒤로 정축(丁丑)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의견이 혼동되다가 결국 AD 85년 후한(後漢) 장제(章帝) 원화(元和) 2년에 사분력(四分曆)으로 개력(改曆)이 진행되고, 세성(歲星)의 초진(超辰)을 고려하지 않게 되면서 정축년(丁丑年)을 BC 104년의 세명(歲名)으로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의 두 가지 상황 즉, 무녀(婺女)라는 별자리가 자(子)와 축(丑)에 걸친 상황과 태초력(太初曆)의 세수(歲首)가 1월인 상황을 고려하면 BC 105년 11월 삭단동지가 든 시점에서 약 두 달을 자(子)로 하고 BC 104년 1월부터 12개월을 축(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9) 세성(歲星) 주기 오차의 문제


앞서 유흠(劉歆)은 세성(歲星)이 144년 지나면 1차 초진을 한다고 하였지만, 실제 현대적으로 밝혀진 목성의 공전주기인 11.8622년을 고려하면 86년 정도 지나면 1차 초진이 일어나게 됩니다. 고로 유흠이 만든 세성(歲星)의 주기를 이용한 공식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법이 아니었고, 나중에 동한사분력(東漢四分曆)으로 개력하면서 더 이상 세성의 초진을 고려하지 않게 됩니다.


10) 삼통력(三統曆)의 장담점


지금까지 태초력(太初曆)과 삼통력(三統曆)에 대해 알아본 내용은 고대의 역법(曆法)이 발전해 가는 초기 과정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적으로 본 내용들과는 당연히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고, 역법(曆法)은 이 이후로도 계속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변경되어 나갑니다. 여기서 소개한 내용은 역원(曆元)을 구하는 것과 관련된 부분을 위주로 모은 것이고, 이것이 삼통력의 모든 내용을 다 말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역원(曆元)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다소 비과학적인 방법도 보이지만, 태초력(太初曆)과 삼통력(三統曆)은 과학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둔 역법(曆法)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가령 일식과 월식을 예보할 수 있게 하였고, 오성(五星)의 회합주기를 매우 실제와 가깝게 제시한 것 등이 있다고 합니다. 


삼통력(三統曆)에서 제시한 태극상원(太極上元)은 절대적인 지점을 찾은 것이 아니라, 태초원년(太初元年)을 기준으로 해서 당시의 지식으로 알려진 정보들을 활용해 거꾸로 찾아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천문 정보가 추가되거나 새로운 법칙이 생기면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는 임시적인 역원(曆元)입니다.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치고 이어지는 글에서 삼통력(三統曆)을 고쳐서 만든 동한사분력(東漢四分曆)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동한사분력(東漢四分曆)까지 봐야 간지기년(干支紀年)에 대한 역사적 배경들이 마무리 되게 됩니다.


© 2017. 11  Joongh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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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中國古代曆法. 張培瑜等著. 中國科學技術出版社 250p. 2008年 [본문으로]
  2. 中國古代曆法. 張培瑜等著. 中國科學技術出版社 254. 2008年 [본문으로]
  3. ①《餘》1.1 ②《合集》1036 [본문으로]
  4. 中國古代曆法. 張培瑜等著. 中國科學技術出版社 185p. 2008年 [본문으로]
  5. 中國古代曆法. 張培瑜等著. 中國科學技術出版社 254p. 2008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