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갑골문

한자강의 5) 아버지 부(父) - 아버지는 무엇을 잡고 계신가?

이칭맨 2017. 9. 2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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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아버지를 뜻하는 부(父)자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父)의 갑골문과 금문>1


부(父)자는 손으로 무언가 긴 지팡이나 작대기를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작대기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양하게 나눠집니다. 비슷한 글자로 윤(尹)자도 있습니다.

<윤(尹)의 갑골문>2


윤(尹)자 또한 손으로 무언가 긴 작대기를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윤(尹)은 《설문(說文)》에서는 “다스릴 치(治)의 뜻이고 일을 담당한 자(握事者)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윤(尹)자의 아래에 구(口)자가 붙으면 군주(君主)라고 할 때의 군(君)이 됩니다. 이때의 구(口)자는 말로 명령을 내리는 것, 혹은 하나의 지역을 표시하는 부호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뜻으로 보고 군(君)을 하나의 지역을 다스리는 군주(君主)의 뜻으로 봅니다.


부(父)자의 경우는 손의 가운데 부위에 맞춰서 작대기가 놓여있는 반면, 윤(尹)자는 그 작대기가 좀 더 아래로 내려온 것들이 많고, 손가락도 2~3개에 걸쳐서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글자의 구별을 위한 표시일 뿐 그 의미상에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부(父)자나 윤(尹)자가 모두 무언가를 다스리는 권력을 의미하는데 부(父)는 주로 가정에서의 역할로 표시되고 윤(尹)은 주로 국가에서의 역할로 표시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기다란 지팡이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가장 큰 상징 의미는 대략 감이 잡힙니다. 즉,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본래 갑골문자에서는 권력이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데요, 윤(尹)자의 경우에는 딱히 이것이 무기라는 것을 가리키는 표시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무기와 관련지어 볼 수 있는 이유는 본래 무기를 나타내는 갑골문자들의 대부분이 기다란 작대기인 말뚝에 도끼나 창을 결합해서 만든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익(弋)의 갑골문, 금문, 소전체>3

<과(戈)의 갑골문, 금문, 소전체>4
 

위에 ‘주살 익(弋)’자는 후대에는 줄을 매달아서 쏘는 화살인 ‘주살’의 뜻으로 쓰이지만 그 글자 모양을 보면 그러한 의미를 찾기 힘듭니다. 《설문(說文)》에서는 익(弋)이 본래 ‘말뚝(橜)’을 뜻한다고 하였고,《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서도 익(弋)이 주살의 뜻으로 쓰인 것은 오류로 인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익(弋)은 주살이 아니라 땅에 박는 말뚝을 의미합니다. ①번 형태에서 아래가 뾰족한 것은 땅에 박기 쉽도록 뾰족하게 만든 것을 과장되게 크게 나타낸 것입니다.


한편 ‘창 과(戈)’자의 ③번 소전체를 보면 익(弋)자의 ③번 소전체와 거의 비슷한 모양이며, 과(戈)자가 좌측으로 가로 선이 하나 더 생긴 것만 다릅니다. 즉, 창을 뜻하는 과(戈)자도 본래 말뚝을 의미하는 익(弋)자와 관련된 것이란 뜻이죠. 그리고 이 가로선은 과(戈)의 ②번 그림에 삼각형 모양으로 나타난 창의 뾰족한 부분을 간단히 선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익(弋)자와 과(戈)자의 ③번 소전체 글자 아랫부분에 곡선은 본래 과(戈)자의 ②번에서 직선 아랫부분에 포크나 삼지창 모양이 나온 것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수건 건(巾)’자의 금문(金文) 모양과 같은데, 건(巾)은 무언가를 덮는 덮개나 장식을 뜻합니다. 즉 무기에 달아 놓은 털로된 장식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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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살 익(弋)’자의 ②번 모양은 ①번처럼 뾰족한 것을 나타내는 대신 그것이 땅에 박힌 것을 나타내기 위해 땅을 표시하는 선을 중간에 그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③번 소전체의 아랫부분에 곡선도 본래 땅을 표시한 선이 과장되게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한 정설은 없고 이렇게 몇 가지 가정만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말뚝에 도끼나 창을 결합시켜서 무기를 만든다는 의미가 무기를 의미하는 갑골문자들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 말뚝에 창을 매어 놓으면 창이 되고, 도끼를 매어 놓으면 도끼가 되며, 공구를 뜻하는 공(工)이 붙으면 여러 종류의 공구들을 이러한 자루에 규격에 맞게 끼우는 '기준'을 의미하는 식(式)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 과(戈)’, ‘도끼 월(戉)’, 무(戊), 술(戌)과 같은 무기를 나타내는 단어들은 아래와 같이 긴 말뚝인 익(弋)자를 기준으로 거기에 창이나 도끼 모양을 덧붙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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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대에 결합시키는 창>6


위와 같이 월(戉)과 무(戊), 술(戌)은 모두 긴 말뚝(弋)에 도끼나 무기를 부착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무(戊)자나 과(戈)자는 단지 무기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경의 뜻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국경에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과 무기를 든 병사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는 국경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수(戍)자, 혹은 국가를 의미하는 국(國)자 등에서 나타나는데 이 글자들은 다음에 해설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무기는 또한 강한 힘과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고 남성 및 남근(男根)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앙소문화(仰韶文化) 토기에 나타난 무기 문양>7


위에 그림은 신석기시대의 토기에 나타난 문양입니다. 새가 물고기를 물고 있고, 생뚱맞게 그 앞에 커다란 도끼가 놓여 있는 모양입니다. 왕소순(王小盾)은 그의 저서 《중국조기사상과 부호 연구(中国早期思想与符号研究)》에서 새가 물고기를 물고 있는 그림은 남녀의 교합(交合)을 상징한 것이고 새가 남근(男根)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아래는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예기ㆍ월령(禮記ㆍ月令)》에 이르길 “중춘지월(仲春之月; 음력 2월)에 ...... 제비가 돌아온다. 제비가 오는 날에 태뢰(太牢 ; 제사에 소, 양, 돼지를 모두 바치는 것)로써 고매(高禖, 아들을 낳게 해주는 신)에게 제사지낸다.(玄鳥至, 至之日, 以太牢祠於高谋)”는 대목이 나온다. 이현백(李玄伯)은 이것은 부인(婦人)과 토템을 배합해서 나온 자식을 낳는 풍속이므로 현조(玄鳥, 검은 새)는 남성을 상징한다고 본다. 청도(靑島)지구에서는 지금도 아직 그와 유사한 풍속을 유지하고 있다. 즉 청명절(淸明節)에 여러 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面燕(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새 모양의 요리)을 요리해서 새로 결혼한 부인에게 보내고, 나이가 찬 여인이 먹어서 하루빨리 임신하여 자식을 낳기를 기원한다. 이런 풍속 중에 현조(玄鳥) 혹은 연(燕)은 남성 생식기의 상징이다. 이로써 고대인들은 새를 남근의 상징으로 본 것이고, 조함어(鳥銜鱼 ; 새가 물고기를 입에 문 것)는 남녀의 교합(交合)을 비유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8


그런데 제가 볼 때에는 우측에 놓인 도끼가 남근(男根)을 상징하는 것이고, 새가 물고 있는 물고기는 뱃속에 태아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뱃속에 태아는 양수 속에 있으므로 물 속에 물고기로 상징한 것 같습니다. 주역(周易)의 천풍구(天風姤)괘에서도 여성이 임신한 것을 포유어(包有魚, 포안에 물고기가 있다.)라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포(包)는 여성의 자궁을 뜻하고, 물고기는 자궁 안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를 상징합니다. 또한 주역(周易)의 택산함(澤山咸)괘도 여성과 남성의 성적인 결합을 표현하고 있는데, 함(咸)자의 갑골문 또한 무기를 나타내는 술(戌)자 아래에 구멍을 의미하는 입 구(口)자가 온 글자입니다. 여기서 무기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구(口)자는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여 남녀가 함께 한다는 뜻의 함(咸)자가 되는 것입니다.

<함(咸)의 갑골문과 금문>9
  

그 외에 '굳셀 장(壯)'자에 들어가는 사(士)자에도 무기의 이미지가  있는데 장(壯)자에서 나타나는 무기도 남성의 성기에 의미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처음에 부(父)자에 나오는 직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추적해 가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요, 다시 부(父)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부(父)자에 나오는 직선은 바로 말뚝으로 볼 수 있고, 이 말뚝은 한편으로는 도끼나 창을 연결해서 무기로 만드는데 쓰이므로 무기의 의미로 까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기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고 남성의 성기에 상징이기도 합니다. 한편 윤(尹)자에 나오는 직선도 말뚝이고 이는 권력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실질적인 도끼나 창이 빠진 말뚝만 있는 직선은 다소 강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권력이 아니라 사람들을 지휘하는 중심 인물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앞서 언급한 식(式)자의 의미처럼 한 가정의 기준이자 법도에 해당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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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직접 말뚝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숙(叔)자의 서주(西周)시기 금문은 아래와 같이 나타납니다.


<숙(叔)의 갑골문과 금문>10

   

이는 말뚝 익(弋)자와 그것을 잡으려는 손이 있고 그 아래에 ‘작을 소(小)’자가 오는 글자입니다. 만일에 여기서 ‘말뚝 익(弋)’자를 부(父)자의 직선과 같이 본다면 이는 아버지를 의미하는 부(父)자의 아래에 ‘작을 소(小)’자가 오는 것이니 ‘작은 아버지’의 의미가 되서 숙부(叔父)를 뜻하는 숙(叔)자가 되는 것입니다. 숙(叔)자를 《설문(說文)》에서는 ‘주을 습(拾)’자로 보고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줍는 것으로 보았고, 일부에선 이것이 본래 콩을 뜻하는 숙(菽)자라고 보기도 하지만 제가 볼 땐 작은 아버지의 의미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아우 제(弟)’자에서도 말뚝이 나타나는데 이 또한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제(弟)의 갑골문과 금문>11


제(弟)자는 말뚝을 뜻하는 익(弋)자가 있고 그 중간에 기(己)자가 오는 글자입니다. 기(己)자의 자세한 의미는 나중에 천간(天干)에서 설명하도록 할 것입니다. 여기선 결론만 말하자면 기(己)는 무언가를 줄로 칭칭 감아 내려가는 모양입니다. 이것을 한 쪽에서 계속 바라보면 줄이 한번은 좌에서 우로가고 다음 한 번은 우에서 좌로 가는 것이 계속 되풀이 됩니다. 또 한번은 앞으로 가고 한번은 뒤로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중간에서 음양(陰陽)이 서로 뒤섞이면서 교체되는 의미가 있으며, 한번은 양(陽)이 위주가 되고, 다음번은 음(陰)이 위주가 되는 음양(陰陽) 변화의 과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제(弟)자에서 기(己)자는 이렇게 음(陰)이 되었다 양(陽)이 되는 변화의 순서, 즉 차제(次第)를 의미합니다. 말뚝이 의미하는 가계(家系)와 그 흐름을 이어가는 순서, 즉 차제(次第)의 의미에서 ‘아우’의 뜻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글자들에서 말뚝이란 단지 남성의 성기와 집안을 대표하는 권력에서 더 나아가 한 집안이 대대로 전해 내려가는 상하(上下)에 흐름, 즉 가계(家系)를 상징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본래 갑골문에 나타나는 기다란 수직선을 '뚫을 곤(丨)'자로 보는데 이는 상하(上下)를 연결하고 관통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죠. 또한 역사의 시대를 구분하는 말로 쓰이는 대(代)자를 보면 이 역시 말뚝의 옆에 ‘사람 인(人)’자가 놓인 것으로 여기서 말뚝은 대대(代代)로 전해 내려가는 가계(家系)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대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가면서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고, 이어서 손주가 대신하기 때문에 대(代)자에는 '대신하다'는 뜻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대(代)의 소전체>


결론은 부(父)자에서 아버지가 들고 있는 것은 가정을 지휘하고 이끄는 권력의 상징이자, 말뚝이며, 남성의 상징이고, 가계(家系)의 상징인 것입니다.


© 2017. 9  Joongh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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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①《은계수편(殷契粹編)》302 ②부신궤(父辛簋) 《집성(集成)》 3060 [본문으로]
  2. 《은허서계전편(殷墟書契前編)》 7.4.3.1 [본문으로]
  3. ①《은허서계전편(殷墟書契前編)》7.31.4 ② 農卣 (西周 중기.《集成》5424) ③ 小篆体 [본문으로]
  4. ①《合集》29783 ② 戈父甲方鼎 (西周 초기.《集成》1519) ③ 小篆体 [본문으로]
  5. (월(戉)) ①《合集》171 ②《은허서계전편(殷墟書契前編)》2.16.2 (무(戊)) ① 司母戊方鼎 (商代.《集成》1706) ② 《乙》8658 (술(戌)) ①《合集》13525 ② 師虎簋 (西周 중기.《集成》4316) [본문으로]
  6. 하남성박물관(河南省博物館) 소장 [본문으로]
  7. 中國彩陶藝術 ; 郑为 著. 圖版 20p. 上海人民出版社 1985年 [본문으로]
  8. 中国早期思想与符号研究—; 关于四神的起源及其体系形成(上)王小盾 著. 811p 上海人民出版社 2007年 [본문으로]
  9. ①《合集》1394反 ② 咸父乙簋 (商代.《集成》3150) [본문으로]
  10. 吳方彝蓋《集成》9898 [본문으로]
  11. ①《은허문자을편(殷墟文字乙編)》8818 ② 雁公鼎《集成》255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