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갑골문

간지(干支)의 의미 -Ⅰ. 천간지지(天干地支)와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

이칭맨 2017. 11. 30. 16:57


갑골문자(甲骨文字)와 주역(周易), 이 둘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바로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에 담긴 철학적 개념입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는 갑골문자의 ABC 라고 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개념들이 많이 들어가 있고, 그 안에 담긴 철학적 개념은 모든 동양철학의 기본 출발점이라고 할 만한 개념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번 글부터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각각의 글자들의 분석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철학적 개념들을 밝혀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직접 글자의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소개해야할 내용이 좀 긴 편입니다. 일단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유래와 그 해를 기록하는 역법(曆法)상의 기년(紀年)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그 다음으로 상대(商代)의 초기 오행(五行) 개념에 대해 설명한 뒤에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글자 분석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유래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란 고대에 날짜를 기록하던 기호를 말하며, 줄여서 간지(干支)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육십갑자(六十甲子)라고 하여 날짜를 기록할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육십갑자(六十甲子)는 상대(商代)의 갑골문에도 실려 있는 내용이므로 그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사진은 중국의 하남성 안양시에 있는 은허박물관(殷墟博物館)의 외부에 조각된 갑골(甲骨) 모형입니다. 실제 《갑골문합집(甲骨文合集)》제37986편(片)에 이와 똑같은 육십갑자 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어떠한 이론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씨춘추ㆍ물궁(吕氏春秋ㆍ勿躬)》편 및 고대의 여러 서적들에서 “(황제(黃帝)의 신하인) 대요(大挠)가 갑자(甲子)를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갑일(甲日) 혹은 다른 날을 간지(干支)로 날자를 기록하는 시작일로 잡았는지도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전해지는 바는 없습니다. 《춘추(春秋)》에 기록된 37차의 일식(日蝕)이 일어난 날의 간지(干支) 기록으로 확인해 보면 춘추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간지(干支)로 날자를 기록하는 간지기일(干支紀日)방식은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합니다.1  그리고 그 이전에도 간지(干支)로 날자를 기록하는 방식을 바꾸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간지(干支)를 이용해서 년(年)을 기록하는 방식은 상대(商代)나 주대(周代)에는 없었고 한대(漢代)에 와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간지(干支)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기록하는 것이 동시에 시작되는 시점을 역원(曆元)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간지(干支)로 년(年)을 기록하는 간지기년(干支紀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나타내는 갑골문들의 의미를 살펴보고 그 흐름을 파악해 보면 여기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 사람들이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에 이름을 붙이면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가져다 붙였을 리는 만무합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 뿐만 아니라 1부터 10까지의 수를 나타내는 글자들에도 역시 같은 개념이 반영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아가고 머무는 단계와 과정을 통해 자연계에 에너지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고대 동양철학의 기본은 바로 이 나아가고 머무는 것을 때에 맞게 하는 것이고 이것을 대나무 마디에 빗대어 절(節)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절(節)자는 ‘대나무 죽(竹)’자 아래에 ‘나아갈 즉(卽)’자가 오는 것입니다. 즉 나아가는 것이 대나무처럼 중간에 마디를 두고 쉬었다가 다시 나아가야 더 오래 길게 나아갈 수 있다는 개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사물의 흐름을 나누는 단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음악을 1절, 2절로 나누고, 책을 몇 장(章)에 몇 절(節)로 부르는 것도 사물의 흐름이 한 번 쉬었다 가는 마디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사물을 나누는 단위의 개념으로 시간을 나눈 것이 천간(天干)입니다. 그리고 나아가는 것이 양(陽)이라면 머무르면서 힘을 기르는 것은 음(陰)입니다. 여기서 오행(五行)도 나오고 역(易)도 나오는 것이며, 상대(商代) 갑골복사에도 나오는 천간(天干)이 그러한 의미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자료 중 가장 오래된 자료입니다.

 

2. 10의 순환 주기


상대(商代) 사람들은 10이라는 수를 수의 기준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십진수의 사용과도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주대(周代)에도 마찬가지이고, 그보다 앞선 하대(夏代) 부터 내려온 습관입니다. 《사기ㆍ주본기(史記ㆍ周本記)》에 서주(西周)말의 유왕(幽王)때 백양보(伯陽甫)라는 인물이 주(周)나라가 망할 것을 걱정하며 말하는 내용 중에 “만일 나라가 망하려 한다면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니, 이는 10이 수(數)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若國亡不過十年, 數之紀也)”라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즘에는 7일을 주기로 하는 일주일을 한 단위로 하듯이, 고대에는 10일을 하나의 주기로 하여 순(旬)이라고 불렀습니다. 상대(商代)에는 10일을 하나의 순환 주기로 보고, 한 달을 삼순(三旬)으로 구분하여 보았습니다. 순(旬)의 갑골문과 금문은 아래와 같이 하나의 순환을 상징하는 고리형태로 나타납니다.


<순(旬)의 갑골문(①)과 금문(②)>2


수를 세는 손가락이 10개이기 때문에 위에 순(旬)의 갑골문도 팔과 손의 모양을 구부려서 순환하는 형태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②번 주대(周代) 금문(金文)에선 그 안에 일(日)자가 들어가듯이 고대인들은 10이라는 주기를 해의 순환주기의 기본으로 보았으며, 뒤에 설명할 천간(天干)도 10을 주기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10일의 순환주기의 하루하루에 1일, 2일이라는 숫자 대신 모두 이름을 붙여서 불렀는데 그 이름은 아래와 같습니다.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3. 해의 순환과 역법(曆法), 틈새와 역(易)이라는 변화.


하루를 나타내는 기준은 해가 뜨고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천간(天干)은 해의 운행을 기준으로 본 것입니다. 이것을 나타내기 위해 순(旬)의 금문(金文)부터는 중간에 ‘해 일(日)’자가 들어갑니다. 반면 뒤에 설명할 지지(地支)는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달이 1년에 12번 차고 기우는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해와 달을 비교하면 해는 양(陽), 달은 음(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것을 천지(天地)에 비교하면 하늘은 양(陽), 땅은 음(陰)에 속하므로 해의 운행을 반영하여 날자를 기록하는 것을 천간(天干), 달의 운행을 반영하여 날자를 기록하는 것을 지지(地支)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러한 해와 달의 운행을 바탕으로 결합된 간지(干支)의 체계는 양력과 음력을 결합한 음양력(陰陽曆)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보통 하(夏)나라 때 해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이 있었고, 상대(商代) 사람들이 해와 달의 운행을 결합한 태음태양력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아래는 중국학자인 진구금(陳久金)과 양이(楊怡)의 저서인 《중국고대천문과 역법(中國古代的天文與曆法)》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는 시간을 나누는 두 가지 방법이다. 천간(天干)은 양력(陽曆)에 속하고, 지지(地支)는 음력(陰曆)에 속한다. ... (중간 생략) ... 천간(天干)은 1년을 10개월로 나눈 것이고, 매월을 36일로 한 태양력의 월명(月名)이며, 지지(地支)는 농력(農歷)의 월명(月名)이다. 천간과 지지를 배합한 뒤에 60개의 숫자를 주기로 하는 기일(紀日)을 만들고, 후에 기년(紀年)과 기월(紀月)에도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은상(殷商) 사람들이 만들었을 수 있다.』3


중국의 학자인 진몽가(陳夢家)가 그의 저서 《은허복사종술(殷墟卜辭綜述)》에서 정리한 상대(商代) 역법(曆法)의 특징은 아래와 같습니다.4

 

1) 일종의 음양력(陰陽曆)으로 윤달이 있다.
2) 윤달은 상대(商代) 초기엔 연말에 두고 13월이라 불렀으나, 후반엔 연중에 두고 1년은 정월에서 12월까지밖에 없었다.
3) 월(月)은 대소(大小)의 구분이 있었다. 대월(大月)은 30일, 소월(小月)은 29일이었고, 1년 중 대소월이 서로 겹치는 빈대월(頻大月)이 있었다.(오늘날 7, 8월이 31일인 것과 같은 개념)
4) 연(年)도 대소(大小)의 구분이 있었으니, 평년(平年)은 12개월, 윤년(閏年)은 13개월이었다.
5) 순환하는 갑자기일(甲子記日)을 사용했지만 매년, 매월이 갑일(甲日)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고, 삭일(朔日)이 갑(甲)에서 만난 것도 아니다.


위에 내용에서 보듯이, 이미 상대(商代) 사람들도 1년, 1달의 주기가 정확이 30일, 360일로 떨어지지 않고, 해가 지날수록 오차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윤달을 두는 등의 방식으로 역법을 수정해가면서 사용했습니다. 그렇다고 매년 새해 첫날을 갑자(甲子)일로 억지로 맞추지도 않고 계속 이어지는 60의 순환주기를 사용한 것은, 60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이상적인 기준을 중요시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1분 60초, 1시간 60분 등은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부터 전해져 온 것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10과 12, 그리고 60이라는 수를 기준으로 구성된 것은 이러한 숫자들이 자연의 변화를 기록하는데 편리함이 있다는 생각을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졌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항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틈이 생기고 그 틈이 점차로 커져가다가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들면 역법(曆法)을 고쳐서 다시 쓰는 것을 고대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이렇게 역법(曆法)을 고치듯 왕조도 새롭게 고쳐서 들어서는 것이 자연의 순환 규칙에 해당되는 사람의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역법(曆法)이나 왕조가 새롭게 바뀌는 것이 역(易)입니다. 단지 태양력이나 태음력이 아니라 해와 달의 운행을 결합한 음양력(陰陽曆)을 사용하는 경우에 그러한 오차는 더욱 눈에 띄게 자주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 생기는 그러한 작은 틈새와 차이가 곧 음양(陰陽)의 차이이고, 이것이 만물의 운동과 변화를 낳는 역(易)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오차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오차를 줄이도록 역법(曆法)을 개정해 나아가는 과정이 오래도록 자연에 적응하는 것이고 하늘을 따르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한서ㆍ율력지(漢書ㆍ律曆志)》에 나오는 아래 대목도 그러한 관점을 보여줍니다.


『고로 은주(殷周) 시기로부터 모두 나라를 세우고 제도를 바꾸었는데, 모두 역기(曆紀. 달력의 기록)를 바로잡고, 의복의 색을 그에 따라 맞추어, 그 시간의 기(氣)에 따라 천도(天道)에 응하였다.(故自殷周皆創業改制, 咸正曆紀服色從之, 順其時氣以應天道)』


진미동(陳美東)의 《중국고대천문학사상(中國古代天文學思想)》에서도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그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역법(曆法)이 오래되면 반드시 차이가 생기고, 차이가 생기면 새로 측정과 계산(測算)을 해서 새로운 역법을 만들어 이전 것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 역법을 연구하는 학자들(歷家)이 옛날부터 모두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어째서 역법(曆法)이 오래되면 반드시 차이가 생기게 되는가? 이에 대해서 고인(古人)들이 토론한 바가 있다. 동한(東漢) 초기의 가규(賈逵)는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

"천도(天道)는 들쭉날쭉 가지런하지 않아 반드시 나머지(餘)가 생기고, 나머지(餘)에는 또 길고 짧은 것이 있으니 나란히 할 수가 없다. ...... (역법의) 이치는 천만년을 관통할 수 없고, 그 사이에 반드시 변경이 있게 되며, 처음에 그 도수(度數)를 구하는 것은 일월성진(日月星辰)의 소재(所在)를 취합했을 뿐이다. 고로 도수(度數)를 구하고 일월성진(日月星辰)을 취합함에는 세대별로 다른 방법이 있게 된다. (天道參差不齊 必有餘 餘又有長短 不可以等齊. ......明數不可貫數千萬歲, 其閒必改更. 先距求度數, 取合日月星辰所在而已. 故求度數, 取合日月星辰, 有異世之術.)"

즉, 역수(曆數)란 객관적인 천체운동을 본뜬 것인데, 천체운동의 본질적 상황은 변동적이고 부정적(不定的)이리고 여긴 것이다. 역수(曆數)와 천체의 실제운동 사이에는 일정 차이가 존재하는데 혹 유여하거나 부족하여 필히 역법의 개혁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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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동한(東漢)시대 학자인 가규(賈逵)의 글에서 천도(天道)가 들쭉날쭉해서 나머지가 생기고, 나머지도 길고 짧은 것이 있다는 것은 천체의 운행주기가 자연수로 떨어지지도 않고, 각각의 천체마다 그 소수점 이하의 숫자들이 제각각이라 여러 개의 천체 운행을 하나로 합쳐 보기가 쉽지 않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1년은 365일이라지만 사실은 1회귀년은 365.24219일이고, 달의 합삭과 다음 합삭의 주기는 29.530588일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0과 12의 주기를 기준으로 보면 한 달은 30일에 못 미치고 1년은 360일을 넘어갑니다. 고대인들이 해와 달의 운행이 이렇게 60진법에 약간씩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사용한 것은 하루와 달을 구분하면서 자연수가 아닌 분수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 불편하기 때문에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 기준을 정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즉 실질적으로 기준이란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기준을 만들어서 깃발처럼 표지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으로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관점이 고대 동양의 관점이고, 그러한 관점은 주역(周易)의 뇌풍항(雷風恒)괘에서도 반영되어 나옵니다.


고대인들은 가장 쓰기 편리한 역법보다는 해와 달과 기타 별들의 운행을 모두 고려해서 역법(曆法) 안에 하늘의 법칙을 모두 담으려는 목적에 치중하다보니 수정도 자주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그레고리력이라는 태양력(太陽曆)을 크게 불편함 없이 사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레고리력도 완벽한 역법은 아닙니다. 두산백과에 나오는 그레고리력의 단점을 보면 ① 1개월의 길이에 불합리한 차이가 있으며, ② 주(週)와 역일(曆日)을 맺는 법칙이 없고, ③ 연초의 위치가 무의미하며, ④ 윤년을 두는 방법이 번잡하다는 등의 결점이 지적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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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늘의 천체운동 주기가 제각각이고, 그 주기도 자연수에 일치하지 않고 소수점 이하의 나머지가 생기는데, 그 나머지를 최대한 줄이는 역법을 만들어도, 아주 작은 오차가 해가 반복되면서 점차로 큰 틈새가 되고 그러면 역법(曆法)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존의 역법과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가 너무 벌어지면 역법을 개혁해서 쓰는 것은 사람의 일에도 적용이 됩니다. 즉, 왕의 덕이 무너지고 왕조의 법규가 타락하여 백성들이 따르지 못하면 혁명을 통해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혁명사상이 주역(周易)이 강조하는 주된 통치철학이기도 합니다. 물론 주역에서는 그렇게 혁명으로 쫒겨나는 왕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왕이 어떻게 덕(德)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4. 10개의 태양과 예사십일(羿射十日) 전설


고대에는 하늘에 10개의 해가 있고, 이 10개의 해가 번갈아 가면서 하늘에 뜬다는 신화가 있었습니다. 《산해경ㆍ해외동경(山海經ㆍ海外東經)》편에서는 탕곡(湯谷)이라는 곳에 있는 전설상의 나무인 부상(扶桑)에서 해가 뜨고 진다는 전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탕곡 위에 부상이 있는데, 열개의 태양이 목욕하는 곳으로 흑치의 북쪽에 있다. 물속에 머무는데 큰 나무가 있어 아홉 개의 태양은 아래 가지에 머물고, 한 개의 태양은 윗가지에 머문다. (湯谷上有扶桑, 十日所浴, 在黑齒北. 居水中, 有大木, 九日居下枝, 一日居上枝.)』


이는 10개의 태양이 매일 하나씩 번갈아 가면서 나무의 제일 윗가지로 올라가 떠오른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해의 아래에 나무가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이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해 아래 나무가 없다는 것은 하늘만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죠. 또, 《산해경ㆍ대황동경(山海經ㆍ大荒東經)》에도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대황지중에 산이 있는데 이름이 얼요군저(孽搖頵羝)이다. 산 위에 부목(扶木)이 있는데, 그 기둥이 삼백리이고, 그 잎은 개(芥, 겨자)와 같다. 거기에 계곡이 있는데 온원곡(溫源谷)이라고 부른다. 탕곡(湯谷)위에 부목(扶木)이 있는데 하나의 해가 이르면 다른 하나의 해가 나간다. 모두 새에 실려서 오고간다. (大荒之中, 有山名曰孽搖頵羝, 上有扶木, 柱三百里, 其葉如芥. 有谷曰溫源谷. 湯谷上有扶木. 一日方至, 一日方出, 皆載于烏.)』


 
즉, 고대인들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실어 나르는 새가 있다는 상상을 한 것입니다. 《회남자ㆍ정신훈(淮南子ㆍ精神訓)》에서는 “해 안에 준오(踆烏)가 있다”고 하였는데 고유(高誘)가 주(注)하길 “준(踆)은 준(蹲)과 같다. 삼족오를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새가 해를 싣고 오고 간다는 이미지나, 해 안에 새가 있다는 이미지나 모두 해와 새의 공통된 이미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 또한 실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이 해안에 삼족오가 태양의 흑점(黑點)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새는 상(商) 부족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상(商)나라의 시조는 설(契)이라 불리는 인물인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ㆍ은본기(史記ㆍ殷本紀)》에는 그의 탄생신화가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은설(殷契)의 어머니는 이름이 간적(簡狄)이며 유융씨(有娀氏)의 딸이고, 제곡(帝嚳)의 차비(次妃, 황제의 정부인인 정비(正妃)의 뒤에 오는 후비)이다. 세 사람이 목욕하러 가다가, 현조(玄鳥, 검은 새)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이를 삼켜 임신하여 설(契)을 낳았다. 설(契)은 성장하여 우(禹)가 치수(治水)하는 것을 도와 공을 세웠다.』


《시경ㆍ상송(詩經ㆍ商頌)》편에서는 “하늘이 현조(玄鳥)에게 명하여, 내려가 상(商)을 낳게 하였다.(天命玄鳥, 降而生商)”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본래 새는 상(商) 민족과 동이(東夷) 민족이 숭배하던 대상이며, 새는 곧 태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고로 이러한 삼족오는 우리 고구려의 상징으로도 나타나기도 하고, 주몽도 알에서 태어난 신화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해에 대한 관점은 상(商)을 멸망시킨 주대(周代)에 와서는 약간 변화가 생기게 되지만, 주역(周易)에서도 여전히 새와 태양은 같은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회남자ㆍ본경훈(淮南子ㆍ本經訓)》에 보면 어느 날 하늘에 이 열 개의 해가 동시에 떠서 사람들이 고통 받았던 전설이 나옵니다.


『요(堯) 임금 때에 이르러,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뜨자 곡식이 마르고 초목이 죽어 백성은 먹을 것이 없었다. 알유(猰貐), 착치(鑿齒), 구영(九嬰), 대풍(大風), 봉희(封豨), 수사(修蛇) 등이 모두 백성에게 해가 되었다. 요 임금은 예(羿)로 하여금 착치(鑿齒)를 주화(疇華)의 들에서 죽이게 하고, 구영(九嬰)을 흉수(凶水)에서 죽이게 하였으며, 대풍(大風)은 청구(靑丘)의 못에서 붙잡게 했다. 예(羿)는 위로는 열개의 태양을 쏘고, 아래로는 알유(猰貐)를 죽였으며, 동정(洞庭)에서 수사(修蛇)를 절단하고, 상림(桑林)에서 봉희(封豨)를 잡았다. 만백성이 모두 기뻐하였고 요(堯) 임금을 천자(天子)로 모셨다.

(逮至堯之時, 十日幷出, 焦禾稼, 殺草木, 而民無所食. 猰貐, 鑿齒, 九嬰, 大風, 封豨, 修蛇皆爲民害. 堯乃使羿誅鑿齒於疇華之野, 殺九嬰於凶水之上, 繳大風於靑丘之澤. 上射十日而下殺猰貐, 斷修蛇於洞庭, 禽封豨於桑林, 萬民皆喜, 置堯以天子.)』


이에 대해 좀 더 친숙한 신화적인 내용은 《초사장구ㆍ천문(楚辞章句ㆍ天問)》편에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요임금 시기에 10개의 태양이 함께 떠올라 초목이 말랐다, 요(堯)임금은 예(羿)에게 10개의 태양을 쏘도록 명령하였다. 예(羿)가 9개의 태양을 명중시키니 해 안에 있던 9마리의 새가 모두 죽어서 그 날개를 떨구었다. 고로 하나의 태양은 남겨두었다. (尧时十日并出, 草木焦枯, 尧命羿射十日, 中其九日, 日中九乌皆死, 堕其羽翼, 故留其一日也)』


즉, 10개의 태양을 다 쏘아서 떨어뜨리면 안 되기 때문에 1개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떨어뜨렸다는 것입니다. 이 전설을 예(羿)가 태양을 쏘았다는 뜻에서 예사십일(羿射十日), 혹은 후예사일(后羿射日)이라고 부릅니다. 예(羿)는 후예(后羿)라고도 불리는데, 단지 신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입니다. 중국학자 왕소순(王小盾)에 의하면 예(羿)는 동이(東夷) 민족과 상(商) 민족의 선조 중 한 사람으로, 하(夏)나라 때 유궁(有窮)이라는 나라를 건립하고, 뛰어난 활 솜씨로 크게 세력을 키운 뒤 하(夏)나라의 왕 태강(太康)을 정복시키기 까지 한 인물입니다. 물론 앞서 전설상의 인물인 예(羿)와 하(夏)나라의 예(羿)가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왕소순(王小盾)은 전설상의 예(羿)가 등장하는 후예사일(后羿射日)의 이야기가 하(夏)나라 예(羿)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설로 보고 있습니다. 하(夏)나라 때의 예(羿)는 태강(太康)을 정복시키고 잠시 하(夏)나라의 왕을 대신하기까지 했으나, 민사(民事)에 신경 쓰지 않고 사방으로 전쟁을 벌이다가 국력을 소모하여 결국 한착(寒浞)이라는 인물에 의해 몰락하고 맙니다. 그런데 앞서 《회남자ㆍ본경훈(淮南子ㆍ本經訓)》에서는 열개의 태양이 떠오른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알유(猰貐), 착치(鑿齒), 구영(九嬰) 등과 같은 낯선 이름들이 등장하면서 예(羿)가 이들을 무찔렀다는 내용이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이 열 개의 태양이 결국 알유(猰貐), 착치(鑿齒), 구영(九嬰) 등이 의미하는 부족들을 상징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왕소순(王小盾)은 그의 저서 《중국조기사상과 부호연구》에서 《회남자(淮南子)》의 신화 내에 나오는 알유(猰貐), 착치(鑿齒), 구영(九嬰), 대풍(大風), 봉희(封豨), 수사(修蛇) 등은 모두 당시에 예(羿)와 적대적 관계에 있던 주변 국가들의 토템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여러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것은 주변에 적대적인 여러 부족을 전쟁에서 물리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왕소순(王小盾)은 또한 예(羿)가 열개의 태양을 쏜 것은 1년을 10개월로 보고 매 달 하나씩의 태양이 번갈아 나간다는 하(夏)나라 때의 관념을 없애고, 상(商) 민족의 선조가 1년 12월의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을 만든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6  또한 이는 상(商) 민족이 만들어 낸 전설이며, 하(夏)나라 때에 있었던 10개의 태양 관념을 부정하고 하나의 태양이 순환한다는 개념을 만든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결국 열 개의 태양은 당시 예(羿)와 대립관계에 있던 여러 부족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아울러 상(商) 부족이 기존에 태양력을 폐기하고 음양력(陰陽曆)을 만든 것과 10개의 태양설을 부정하고 하나의 태양이 순환한다는 개념으로 바꾼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화를 바탕으로 해서 보면, 하대(夏代)에 사용한 태양력이나 10개의 태양설 등이 본래는 상(商) 부족의 선조가 하(夏)나라를 도와서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국 고대 전설, 진화, 지리 등에 관한 책인 《산해경ㆍ대황남경(山海經ㆍ大荒南經)》 편에는 “희화(羲和)는 제준(帝俊)의 처인데 10개의 태양을 낳았다.”는 전설이 나옵니다. 또한 《산해경ㆍ대황서경(山海經ㆍ大荒西經)》편에서는 “제준의 처 상희(常羲)는 12개의 달을 낳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제준(帝俊)은 상(商)나라 사람들이 섬기던 동이(東夷) 민족의 상제(上帝)로, 희화(羲和), 상희(常羲), 아황(娥皇)이라는 세 부인이 있었는데 그 중 희화(羲和)가 10개의 태양을 낳았고, 상희(常羲)는 12개의 달을 낳아 10개의 태양과 12개의 달이 번갈아 뜨고 지면서 순환한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10개의 해와 12개의 달은 일차적으로는 그 순환주기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학자들은 실제로 하대(夏代)에는 10개의 태양이 번갈아 뜬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러한 관념이 상대(商代)의 선조에 의해 하나의 태양이 순환하는 개념으로 바뀌는 것이 10개의 태양 중 아홉 개의 태양을 쏴서 떨어뜨린다는 상징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역법(曆法)의 사용을 위해서 여전히 기존에 사용하던 10이라는 주기와 그 상징의미는 상대(商代)에도 계속 유지해 간 것이고, 육십갑자에도 여전히 천간(天干)의 이름을 사용한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하나의 나라를 혁명으로 멸망시킨 뒤에도 이전 왕조의 철학을 섣불리 무시하고 없애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전 왕조의 철학을 그대로 계승만 한 것도 아니고, 기존의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시대에 맞는 형태로 변형시켜 갔습니다. 그래서 하상주(夏商周) 삼대가 변하면서 연산역(連山易), 귀장역(歸藏易), 주역(周易)의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나는 역(易)이 나오게 되고, 역법(曆法)도 새로운 왕조에 맞게 변화되어 나오게 됩니다. 나중에 다룰 테지만 상대(商代)의 오행(五行)과 주대(周代) 이후의 오행(五行)도 차이가 생깁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의 체계를 완전히 부정하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변경시켜서 나온 것입니다. 


상대(商代)에는 왕의 이름에 천간(天干)의 이름을 넣어서 무정(武丁), 제을(帝乙) 등과 같이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래 보는 바와 같은 상대(商代) 왕(王)들의 이름에 들어가는 천간(天干)의 이름은 그 순서가 뒤죽박죽입니다.


武丁 → 祖庚 → 祖甲 → 庚丁 → 武乙 → 文丁 → 帝乙 → 帝辛


무정(武丁) 이전의 왕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천간(天干)의 진행 순서가 아니라 각 왕의 사망일을 이름에 넣은 것일 뿐입니다. 음양력(陰陽曆)에서도 날자를 기록하는데 여전히 천간(天干)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선왕(先王)들의 제사일을 기억하기 쉽게 하려고 이름에 천간(天干)이 들어간 것입니다. 다만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상(商)나라를 건국한 탕왕(湯王) 이전에 선공(先公)들의 이름에는 천간(天干)의 이름이 아래와 같이 순서대로 붙습니다.


上甲微→ 报乙 → 报丙 → 报丁 → 示壬 → 示癸


호후선(胡厚宣)의 《은상사(殷商史)》에 의하면 상(商)나라를 건국한 탕왕(湯王) 이전의 선조들 중 상갑미(上甲微)부터 시계(示癸)까지는 천간(天干)의 순서로 이어지는 것은 선조들의 사망일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천간(天干)의 순서를 빌려서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7  그것도 상갑미(上甲微)부터 시계(示癸)까지 10명이 안되고 6명뿐이니까 앞에 4명은 갑을병정(甲乙丙丁)순으로 넣고 마지막에 시임(示壬)과 시주(示癸)는 임계(壬癸)를 붙여서 끝낸 것을 보면 그러한 취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육십갑자는 1년에 달이 12번 차고 기울기 때문에 12라는 숫자를 사용한 것이고, 10이란 숫자를 태음력과 결합하려다 보니 한 달을 30일로 잡고 12번 반복하면 1년에 가까운 360일이 나오기 때문에 해의 순환주기를 10으로 보고 각각의 단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1회귀년의 주기가 360일이 아니었다는 것은 상대(商代) 사람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진몽가(陳夢家)는 《은허복사종술(殷墟卜辭綜述)》에서 상대(商代) 사람들이 윤달을 사용한 것을 참고로 하여 당시에 이미 1회귀년이 360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9일과 30일의 주기가 12달 계속되면 355일 정도가 되고, 윤달을 두면 대략 360~370일 사이라고 보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는 토템과 상징의 언어를 많이 사용한 시대입니다. 앞서 소개한 《산해경ㆍ해외동경(山海經ㆍ海外東經)》편에서 해가 나뭇가지에 머문다고 했는데 이것이 상징이 아니라 실재라면 해 아래 나뭇가지가 보여야겠죠. 그러한 고대의 상징적 이미지들을 상징으로 보지 않고 실재로 받아들여서 주역(周易)에 산풍고(山風蠱)괘의 이미지를 산 아래 바람이 분다고 잘못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었고, 오행(五行)의 목생화(木生火)를 나무에 불이 붙는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었듯이, 상대(商代) 이후에도 이러한 전설을 진짜로 하늘에 10개의 해가 있다고 해석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商代)에 이미 자신들의 손에 의해 부정된 이론이고 흔적만 남은 전통일 뿐이지,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5.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에서 알아볼 내용.


천간(天干)의 흐름은 해의 운행을 바탕으로 하므로 그 글자들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양기(陽氣)의 순환 과정이 상징적으로 들어있기도 하고, 그것이 바로 초창기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의미로 연결되게 됩니다. 상대(商代) 갑골복사에 나오는 천간(天干)과 사방풍(四方風)의 내용은 상대(商代)에 이미 오행(五行)의 기본 이론이 갖추어져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간(天干)에서 나아가고 머무는 과정을 말하는 것에 이미 상극(相克)의 개념이 반영되어 있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오행(五行)의 용어로 나타나는 것은 상대(商代) 말기의 기자(箕子)가 전해준 《홍범(洪範)》이라는 글이며, 그것이 주대(周代)를 거쳐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오행(五行)의 구조로 완성되게 됩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나중에 따로 설명할 것입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글자 의미를 공부하는 이유는 이걸로 사주팔자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적 내용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여기 반영된 이론들이 음양오행(陰陽五行)과도 연결이 되고, 이것이 또한 주역(周易)에서도 일부 반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주역이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이용해서 사주를 보고 점을 친 것은 아닙니다. 음양오행이 사주로 점을 치기 위해 만든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간지(干支)를 고대에 점술에 응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상대(商代)의 갑골복사에서도 “신일(申日)에 아이를 낳으면 길(吉)하다.(申娩吉)”와 같은 날자와 연관된 점복(占卜)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복(占卜)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점을 치는 방식이나 신빙성이 문제인 것이지 천간지지(天干地支)나 오행(五行)이나 주역(周易)의 문제가 아닙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에 쓰인 갑골문자들은 당시의 기본적인 철학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고, 갑골문자의 ABC라고 해도 좋을 만큼 주역(周易)에 나오는 다른 글자들의 이해에 바탕이 되는 글자들이 많습니다.


이 정도로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에 대한 개요를 마치고 다음 장에서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역원(曆元)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2017. 11 Joongh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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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中國古代的天文與曆法 88p. 陈久金, 楊怡 1999年. 商務印書館出版 [본문으로]
  2. ①《合集》11482 ② 繁卣 (西周중기.《集成》5430) [본문으로]
  3. 中國古代的天文與曆法 109p. 陈久金, 楊怡 1999年. 商務印書館出版 [본문으로]
  4. 진몽가(陳夢家) :《은허복사종술(殷墟卜辭綜述)》223p. 中華書局. 1956年 [본문으로]
  5. 中國古代天文學思想 陳美東 著. 611p. 中國科學技術出版社. 2007年 [본문으로]
  6. 中国早期思想与符号研究—; 关于四神的起源及其体系形成(上)王小盾 著. 619p ~ 631p 上海人民出版社 2007年 [본문으로]
  7. 은상사(殷商史) : 胡厚宣 胡振宇 著. 20p. 上海人民出版社. 2003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