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 효사

周易) 天風姤 - 초육 : 繫于金柅 貞吉. 有攸往 見凶. 羸豕孚蹢躅

이칭맨 2017. 11. 8. 17:20




이번 글에선 중천건(重天乾)괘의 초구효가 동한 지괘(之卦)인 천풍구(天風姤)괘의 괘사와 초효에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출처 : pixabay.com


1. 천풍구(天風姤)괘의 역사적 배경


일단 천풍구(天風姤)괘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 배경은 서주(西周)의 마지막 왕인 유왕(幽王)과 포사(褒姒)라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제 동영상 강의 첫 시간에 설명했듯이 주역(周易)은 동주(東周) 초기까지 수정, 보완되어 가면서 써졌으므로 동주(東周) 초기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이 배경으로 나옵니다. 천풍구(天風姤)괘는 그보다는 조금 이른 서주(西周) 말기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왕(幽王)은 이미 정부인인 신후(申后)와 태자(太子)인 의구(宜臼)가 있었는데, 포국(褒國)에서 주(周)나라 왕실에 바친 여인인 포사(褒姒)에게 반하여 자신의 부인과 태자를 폐위시키고 포사(褒姒)를 왕비로 앉히고 포사가 낳은 아들인 백복(伯服)을 태자로 앉혔습니다. 유왕(幽王)은 포사(褒姒)를 웃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포사(褒姒)는 잘 웃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적군이 쳐들어온 봉화가 올려지고 제후들과 군사들이 허둥지둥 달려오는 모습을 본 포사(褒姒)가 크게 웃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 이후 유왕(幽王)은 포사(褒姒)를 웃게 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봉화를 울리는 양치기 소년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폐위된 신후(申后)의 부친인 신후(申侯)가 견융(犬戎)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는데, 비록 봉화가 올려졌으나 여러번의 거짓봉화에 속은 제후들은 달려오지 않아 유왕(幽王)은 패하고 달아나게 됩니다.



천풍구(天風姤)괘는 이 사건 중에서 포사(褒姒)가 궁에 들어와서 왕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괘사에서 물용취녀(勿用取女)라고 한 것은 포사(褒姒)라는 여인을 부인으로 취하지 말라는 경고에 해당이 됩니다. 그러나 초효는 그러한 경고를 무시하고 포사(褒姒)가 유왕(幽王)의 총애를 받게 되는 상황부터 시작이 되고, 그 시작은 맨 처음 효에 나와야 하므로 초육효사에 남녀의 결합을 암시하는 문장이 오게 되는데 그것이 계우금니(繫于金柅)입니다. 



괘사
姤 女壯 勿用取女
구 여장 물용취녀


초육
繫于金柅 貞吉. 有攸往 見凶. 羸豕孚蹢躅
계우금니 정길. 유유왕 견흉. 리시부척촉


2. 계우금니(繫于金柅)


1) 계(繫) - 묶다, 연결되다.


천풍구괘의 효사에 맨 앞부분은 계우금니(繫于金柅)라는 내용입니다. 계(繫)는 끈으로 묶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실제로 죄수처럼 묶는다는 뜻도 되지만, 서로 관련을 가지고 인연을 맺는다는 의미로 해석도 됩니다.


2) 금(金) - 강한 것, 왕(王)


금(金)은 반짝이는 황금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것을 상징하는 물질이고, 이는 곧 왕(王)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유왕(幽王)을 상징합니다. 천풍구(天風姤)괘에서는 하괘의 손(巽)이 포사(褒姒)에 해당되고 상괘의 건(乾)이 유왕(幽王)에 해당이 됩니다. 한편 하괘 손(巽)의 초육이 동한 지괘(之卦)인 건(乾)괘도 왕(王)에 해당이 됩니다. 고로 앞에서 묶는다는 의미의 계(繫)는 포사(褒姒)와 유왕(幽王), 여성과 남성, 음(陰)과 양(陽)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3) 니(柅) - 고동목


니(柅)는 보통 수레바퀴가 나아가지 못하도록 땅에 괴어두는 고동목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고동목이란 것이 실제로 어떤 모양이지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쐐기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래 그림처럼 끝이 뾰족한 v자 모양이어야 바퀴 밑에 받혀주기 용이했겠죠.



그런데 이러한 모양의 고정장치는 광범위한 의미의 쐐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쐐기란 무언가 틈새에 밖아 넣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땅에 괴어 놓는 고동목 말고 마차의 바퀴에서 이러한 쐐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할(轄)이라고 불리는 장치입니다. 할(轄)은 우리말로는 ‘굴대빗장’이라고 불리는데 같은 쐐기 이지만 그 역할은 고동목과는 반대입니다. 고동목은 수레가 나아가지 못하게 고정시키는 것이고, 굴대빗장인 할(轄)은 양쪽의 수레바퀴를 이어주는 긴 차축인 굴대에 수레바퀴를 고정시켜서 수레가 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입니다.


<그림출전 : 은허박물관(殷墟博物館) 전시도>


위에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대에는 사람이 올라타는 부분인 차여(車輿)라고 불리는 부분의 아래에 긴 차축인 굴대가 있습니다. 이 굴대가 수레바퀴를 통과해 나온 부분에 예(軎)라고 불리는 원통형의 굴대머리를 씌운 뒤에 예(軎)에 난 구멍에 할(轄)이라는 굴대빗장을 끼워 넣었습니다.

 

<예(軎)에 할(轄)이 꽂힌 모습(左)과 빠진 모습(右), 은허박물관 전시모형>


이렇게 하면 할(轄)이 예(軎)에 고정되고 예(軎)가 굴대축에 고정이 되어서 바퀴가 빠지지 않게 됩니다. 진준투할(陳遵投轄)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이는 진준(陳遵)이라는 사람이 술을 몹시 좋아하여 손님이 집에 모이면 대문을 닫아 빗장을 걸고 손님들이 급한 일이 생겨도 가지 못하도록 타고 온 수레의 굴대빗장인 할(轄)을 우물에 던져 넣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렇게 수레바퀴와 굴대축의 결합, 혹은 예(軎)와 할(轄)의 결합은, 음(陰)과 양(陽), 여성과 남성의 결합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앞서 공(工)자를 설명하면서 모든 공구란 기본적으로 음(陰)과 양(陽)을 결합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이러한 수레바퀴 고정장치 역시 음(陰)과 양(陽)의 결합으로 설명이 가능한 이미지입니다. 또 앞서 건(乾)괘의 이름을 설명하면서 주역에서 종종 음(陰)과 양(陽),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자물쇠와 열쇠처럼 구멍에 무언가 장대 같은 것을 넣는 것으로 상징해서 나타낸다고 했었는데요, 이렇게 구멍 틈새로 쐐기나 못을 밖아 넣는 것 또한 건괘(乾卦)와 손괘(巽卦), 양(陽)과 음(陰),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남녀의 성행위를 암시하는 것이죠. 앞서 이러한 건(乾)의 개념을 선전(旋轉)이라는 의미와 연관지어서 현대적 공구인 나사못이 박혀 들어가는 이미지로도 설명한 바 있고, 자물쇠나 빗장, 수레바퀴의 축에 바퀴가 결합되는 것으로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둥그렇게 돌아가는 바퀴의 이미지 또한 선전(旋轉)의 의미와 통하기도 합니다.


이 천풍구괘의 여주인공인 포사가 유왕과 관계하여 임신과 출산을 완성해 가는 것이 천풍구(天風姤)괘의 주된 흐름이기 때문에 초효에 계우금니(繫于金柅)를 쐐기를 밖아 넣는 것으로써 남녀의 성행위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천풍구(天風姤)괘 외에 풍천소축(風天小畜)괘와 산천대축(山天大畜)괘에서도 이렇게 수레의 굴대와 수레바퀴, 혹은 차축과 사람이 타는 부위인 차여(車輿)의 결합과 분리를 통해 음(陰)과 양(陽), 여성과 남성의 결합과 불화를 상징하는 대목들이 나옵니다.


3. 주역에서 수레의 이미지


보통 진(震)괘에 수레의 상이 있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사실 수레의 구조체와 수레바퀴는 건(乾)괘가 상징하고, 진(震)괘가 상징하는 것은 수레의 윗부분에 사람이 올라타는 차여(車輿) 부분입니다. 진(震)괘는 바닥이 막히고 위에는 빈 공간의 형태이므로 빈 그릇의 상이 있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빈 그릇의 바닥에 물이 조금 차 있는 상입니다. 태(兌)괘도 마찬가지로 그릇의 상이 있는데 진(震)괘보다는 물이 조금 더 차오른 상태입니다.



이러한 그릇의 모양이 마차에서는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인 차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건(乾)괘의 초효와 삼효는 수레의 양쪽에 달린 바퀴에 해당되고, 중앙에 이효는 양쪽의 바퀴를 중앙에서 연결하면서 위로 사람이 타는 차여(車輿) 부분을 받치는 차축에 해당이 됩니다. 풍천소축(風天小畜)과 산천대축(山天大畜)에 나오는 수레의 이미지는 모두 하괘 건(乾)괘의 이미지에서 나온 것이고, 천풍구(天風姤)괘의 초효에 나오는 수레의 이미지는 건(乾)괘의 초구가 동해서 된 손(巽)괘의 이미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풍천소축(風天小畜)괘의 경우 하괘 건(乾)의 삼효가 동하면 태(兌)괘가 되는데, 태(兌)괘는 무언가 증발하고 밖으로 탈락해 나가서 훼절되는 이미지가 있으므로 차축에서 수레바퀴가 분리되어 수레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미지가 나옵니다. 풍천소축괘의 구삼효사는 “여탈복, 부처반목(輿說輻, 夫妻反目)”인데 이는 “수레에서 바퀴살이 빠져나간다. 남편과 부인이 반목한다.”는 내용입니다. 여탈복(輿說輻)에서 여(輿)는 수레의 뜻이고, 탈(說)은 빠져나가는 것이며, 복(輻)은 바퀴살입니다. 바퀴살이란 수레바퀴의 둥그런 테두리에서 바퀴의 중심을 향해 방사선 모양으로 이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림출전 : 은허박물관(殷墟博物館) 전시도>


이 바퀴살이 모두 빠지면 바퀴가 수레에서 벗어나게 되니 바퀴살이 빠졌다는 것은 수레바퀴가 수레의 차축에서 빠져 나가서 수레가 나아가지 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오는 부처반목(夫妻反目)이란 남편과 부인이 서로 불화하여 다툰다는 의미인데, 이는 앞서 수레바퀴가 차축에서 빠지는 것을 통해 음양(陰陽)의 불화와 분리를 상징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레의 바퀴살이 빠진다는 내용을 앞서 소개한 예(軎)와 할(轄)의 결합이 분리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축(小畜)괘의 효사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처반목(夫妻反目)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부부간의 내적인 갈등이므로 어떠한 외적인 요인에 의해 바퀴살이 빠지는 것보다는, 할(轄)이 빠져나가서 바퀴가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산천대축(山天大畜)괘의 경우는 하괘 건(乾)의 중앙인 이효의 자리에 여탈복(輿說輹)이라는 단어가 오는데, 이때의 복(輹)은 앞서 풍천소축(風天小畜)괘의 복(輻)과 발음은 같지만 서로 다른 구조물입니다. 이는 복토(伏兎)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사람이 올라타는 차여(車輿)와 차축을 연결 고정하는 장치입니다. 이것이 내려져 있으면 수레가 나아가지 못하던가 혹 나아가더라도 차여(車輿)는 뒤에 두고 수레 구조물만 나아가게 되겠죠.

앞서 소축(小畜)괘에 나온 복(輻)은 양쪽의 수레바퀴에 있는 장치이므로 건(乾)괘의 삼효의 자리에 오는 것이고, 건(乾)의 삼효가 동해서 음(陰)이 되면 무언가 빠져 나가 빈자리가 생긴 이미지가 되므로 수레바퀴가 차축에서 빠지는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대축(大畜)괘에서 수레의 이미지는 중앙의 이효에 오므로 수레의 중앙부위에서 차축에 고정된 복토(伏兎)인 복(輹)의 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소축(小畜)괘가 삼효에 수레의 이미지가 오고, 대축(大畜)괘가 이효에 수레의 이미지가 왔다면, 천풍구(天風姤)괘는 초효에 수레의 이미지가 옵니다. 초효는 삼효와 함께 수레의 바퀴부분에 해당되는데, 양효(陽爻)가 동해서 음효(陰爻)가 되면 둘 다 나아가지 못하거나 머무는 것이 좋은 상이 위주가 됩니다. 그 중에서 삼효가 동하면 태(兌)괘가 되고 앞서 말했듯이 태(兌)괘는 뭔가 훼절당하는 이미지가 있으므로 바퀴가 빠져서 수레가 나아가지 못하는 상이 나온 것입니다. 반면 초효가 동하면 손(巽)괘가 되는데 이는 안으로 웅크리고 들어가서 머무는 것이 좋기 때문에 비록 바퀴가 빠지지 않더라도 나아가지 않는 이미지가 위주가 됩니다. 그래서 바퀴를 고정시키는 고동목의 상이 나온 것입니다.


4. 계우금니(繫于金柅), 격우금제(擊于金梯)


금니(金柅)에서 앞에 금(金)이 왕을 상징하기 때문에 금속처럼 단단한 니(柅), 혹은 금속으로 만든 니(柅)인 금니(金柅) 자체도 남성과 왕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때 니(柅)는 쐐기처럼 무언가에 들어가서 박히는 것으로 양적(陽的)인 성질을 나타내게 되고, 이것이 무언가 틈새에 들어가서 박히는 것은 음(陰)과 양(陽)의 결합, 여성과 남성의 결합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계우금니(繫于金柅)는 직역하면 왕을 상징하는 금니(金柅)에 연결된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 즉 유왕(幽王)과 포사(褒姒)의 성적인 결합을 상징합니다. 주역의 또 다른 판본인 백서주역(帛書周易)에서는 계(繫)자 대신에 ‘칠 격(擊)’자가 옵니다. 이 경우는 쐐기같은 금니(金柅)를 탕탕 쳐서 틈새에 밖아 넣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본래 정상적인 남녀의 결합은 굴대축과 수레바퀴, 혹은 예(軎)와 할(割)의 결합이 나타내는데, 지금 천풍구(天風姤)괘는 비록 금니(金柅)가 바퀴에 붙어서 고정되긴 하지만 굴대에 결합되서 수레가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퀴의 아래를 고정시키도록 해서 수레가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계속 유지되어 나아가기 힘든 부부관계이기도 하지만 왕과 정부인의 관계가 아닌 남성과 첩의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백서주역에서는 니(柅)자가 사다리를 뜻하는 제(梯)자로 나옵니다. 천풍구(天風姤)괘의 주된 줄거리가 포사(褒姒)가 유왕(幽王)의 아들을 낳아서 자신의 신분이 왕비로 상승하는 것을 말하고 있으므로 사다리의 상징이 오는 것은 접합하지만, 앞에 계(繫)자나 격(擊)자와 잘 아울리지 않으므로 제(梯) 보다는 통행본의 니(柅)자를 따릅니다.


이 계우금니(繫于金柅)에서 니(柅)를 말뚝으로 해석해서 뒤에 나오는 마른돼지가 상징하는 인물이 나아가지 못하도록 단단한 말뚝에 묶어두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만, 그보다는 수레바퀴에 붙어서 수레가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의 이미지가 단어 자체의 의미도 그대로 살릴 수 있고 전체적인 상징 의미상으로도 잘 통합니다.


5. 구(姤), 후(后)


이렇게 계우금니(繫于金柅)에는 남녀의 성행위를 암시하는 이미지가 들어 있기도 한데, 이는 괘 이름인 구(姤)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姤)는 만나다는 뜻인데 남녀의 결합을 뜻합니다. 또 좌측에 여(女)자가 빠진 후(后)자는 그 갑골문자의 어원을 쫓아가보면 여성의 출산을 의미하기도 하고 왕비의 뜻도 있습니다. 고로 구(姤)라는 제목은 포사(褒姒)가 출산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왕비의 자리까지 상승시키는 것과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이 외에 천풍구(天風姤)괘의 오효에도 남녀의 성행위를 암시하는 문장이 나옵니다. 바로 이기포과(以杞包瓜)라는 문장입니다. 이기포과(以杞包瓜)란 직역하면 “구기자 잎으로 오이를 감싼다”는 뜻인데 이 또한 남녀의 성행위와 음양(陰陽)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문장입니다.


6. 정(貞)의 의미


이번엔 정길(貞吉)의 뜻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貞)은 ‘바를 정(正)’ 혹은 ‘정할 정(定)’의입니다. 주역에 나오는 정(貞)은 정(正)과 정(定)의 의미를 결합해서 바른 자세를 계속 지키고 유지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래 갑골복사에서 정(貞)은 점을 봐서 묻는다는 뜻으로 쓰였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정(貞)은 “점을 봐서 묻는 것이다(卜問).”라고 했기 때문에 주역(周易)에 나오는 정(貞)자도 전부 점을 봐서 묻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중국에 이학근(李學勤)은 그의 저서 《주역소원(周易溯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서주(西周)시기에 정(貞)자는 복(卜)의 뜻으로 쓰이지만, 홍동방퇴촌(洪洞坊堆寸)의 서주(西周) 유적지에서 발굴된 복사(卜辭)처럼 정(貞)자가 복사(卜辭)의 맨 뒤에 오는 경우는 바를 정(正)자의 뜻으로 새겨야 한다.』1


즉, 이미 서주(西周)시기부터 정(貞)이 “점치다”는 뜻 외에 '바를 정(正)'의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물며 동주 초기에까지 수정과 보완이 계속된 것으로 보이는 주역 통행본의 경우에 정(貞)이 '바를 정(正)'의 뜻으로 쓰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주역에 나오는 정(貞)을 점쳐서 묻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너무 이상한 억지 해석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주역(周易)의 효사와 괘사에서 정(貞)이 맨 앞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뒤에 나오므로 주역(周易)에 나오는 정(貞)은 점을 친다는 뜻으로는 하나도 쓰이지 않습니다. 간혹 앞에 나와도 리정(利貞)이라는 단어로 나오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갑골 복사의 앞부분에 나오는 정(貞)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쓰인 것입니다.


7. 유유왕, 견흉(有攸往, 見凶)


뒤에 오는 “유유왕, 견흉(有攸往, 見凶)”은 앞서 중천건(重天乾)괘의 초구효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즉, 나아가면 흉함을 보게 된다는 뜻이죠. 이때 나아가는 것은 금니(金柅)나 수레가 아니라 뒤에 나오는 마른 돼지가 상징하는 여인인 포사(褒姒)입니다. 포사(褒姒)가 자기 멋대로 나아갈 수 있게 되면 유왕(幽王)과 주(周)나라가 흉함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견(見)은 피동의 뜻으로 봐서 흉함을 당한다고 해석했습니다.


8. 리시(羸豕), 마른 돼지


리시부척촉(羸豕孚蹢躅)에서 리(羸)는 야위고 마른 것이고, 시(豕)는 돼지입니다. 리시(羸豕)는 마른 돼지이고 여기서는 포사(褒姒)를 상징합니다.


9. 부(孚)의 의미


부(孚)는 ‘믿다’는 뜻입니다. 이 부(孚)자 역시 서주(西周)시기까지는 주로 포로의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주역(周易)에 나오는 부(孚)자도 포로의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또한 앞서 정(貞)자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맨 먼저 강의에서 말했듯이 주역이 완성된 것은 동주(東周)초기이고 그 동안 계속 이어지면서 당시의 역사와 언어에 맞게 효사를 수정해 간 것이므로 비록 서주(西周) 시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효사라 하더라고 이 부(孚)자가 믿음의 뜻으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풍택중부(風澤中孚)괘에 나오는 부(孚)자만 일부 간접적으로 그런 포로와 같은 의미가 담겨있을 뿐 기본적으로 주역에 나오는 부(孚)자는 모두 다 믿음의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부(孚)자가 왜 포로에서 믿음의 뜻으로 확장이 되는지는 풍택중부(風澤中孚)괘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이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도록 할 것입니다.


주역에 나오는 믿음에는 상호간에 믿음도 있고, 하늘의 신에 대한 믿음도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만도 있습니다. 리시부척촉(羸豕孚蹢躅)에서 부(孚)는 자만 혹은 자신이 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믿음을 등에 업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10. 척촉(蹢躅)


척촉(蹢躅)은 깡충깡충 뛰는 것을 말합니다. 척(蹢)은 발굽이고 촉(躅)은 발자국입니다. 글자는 약간 다르지만 고대 중국의 위(魏)나라때 자전인 《광아(廣雅)》에서 척촉(蹢 足+屬)은 다주(跢跦)와 같다고 하였는데, 다주(跢跦)란 넘어질 듯 깡충깡충 뛰는 모양을 말합니다. 이렇게 깡충깡충 뛰는 것은 손(巽)괘가 움츠렸다 도약하는 것에서 나오는 이미지입니다.



지금 손(巽)괘가 상징하는 여인인 포사(褒姒)가 자신의 위에 놓인 건(乾)괘가 상징하는 유왕(幽王)을 우습게 여기고 도약해서 쥐락펴락하려고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본래 손(巽)괘의 도약은 충분히 힘을 기르고 강하게 도약해서 나아가는 것이지 마른 돼지가 깡충깡충 뛰듯이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아직 충분히 힘을 기르기도 전에 서둘러 도약해 나아가려는 이미지가 됩니다.


11. 양(陽)적인 용(龍), 음(陰)적인 돼지


마른 돼지가 지금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머무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도약해 나아갈 수 있으므로 이러한 웅크린 자세를 오래도록 유지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마른돼지가 조용히 머무는 것은 건(乾)괘의 초구효사에 대응해서 보면 잠룡(潛龍)의 잠(暫)처럼 웅크리고 있는 상태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힘을 키워서 나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으므로 기용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앞서 중천건(重天乾)괘에서는 양효(陽爻)를 대표하는 용(龍)이 상징으로 나왔는데요, 이는 중천건(重天乾)괘가 양(陽)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천풍구(天風姤)괘는 반대로 음(陰)에 해당되므로 음적(陰的)인 동물인 돼지가 상징으로 나옵니다. 돼지가 음적(陰的)인 이유는 살이 찐 동물이므로 에너지를 몸 안에 지방으로 축적해서 담아두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른돼지라고 한 것은 초효는 아직 이 돼지가 상징하는 여인이 위로 도약할만한 충분한 힘을 키우고 있지 않은 상태임을 상징한 것입니다.



앞서 손(巽)괘가 처음에는 음(陰)으로 움츠렸다가 점차로 힘을 키워서 나중에는 위로 도약해 가는 이미지라고 하였는데요. 그렇다고 이효나 삼효에서 도약을 해서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초효와 마찬가지로 이효와 삼효도 대부분 안에서 아직 움츠리고 힘을 키워가는 것은 같습니다. 다만 이효와 삼효로 가면서 점차 내부에 힘이 증가해 나아가는 것이 이효와 삼효의 양효로 나타나는 것이구요. 즉, 손(巽)괘 전체가 하나의 내부공간에 해당됩니다. 그렇게 안에 쌓인 힘을 바탕으로 도약해 나아가는 것은 삼효를 지나고 나서 상괘로 올라가면서부터입니다. 그래서 손(巽)괘가 하괘에 올 때 상괘의 시작인 사효의 자리에는 대부분 이러한 하괘 손의 도약에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손괘 자체에서는 초효에서 삼효까지 힘을 키워가는 상인데, 그 중에 초효는 가장 시작단계에 해당되어 아직은 내부에 힘을 충분히 기르지 못한 단계입니다. 고로 돼지를 그냥 돼지가 아니고 리시(羸豕), 즉 마른 돼지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중천건(重天乾)괘와 천풍구(天風姤)괘의 초효에 각각의 내용이 파악이 되고, 이들의 이미지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도 파악이 되게 되죠. 다음 글에서는 중천건(重天乾)괘의 두 번째 효인 구이효와 그 지괘(之卦)인 천화동인(天火同人)괘의 육이효에 효사를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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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李學勤:《周易溯源》,四川出版集團巴蜀書 2006年. 197p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