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시법(揲蓍法) 이란
고대인들이 점을 칠 떄 사용하던 방법은 크게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를 태워서 생긴 금의 모양을 보고 점을 친 점복법(占卜法)과 50개의 시초풀이나 나뭇가지를 둘로 갈라서 나오는 숫자를 참고해서 점을 친 설시법(揲蓍法)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설시법(揲蓍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설시(揲蓍)에서 설(揲)은 숫자를 세다는 뜻이고 시(蓍)는 시초풀과 같은 가느다란 재료를 뜻합니다. 즉 시초풀이나 나뭇가지의 숫자를 세서 점을 친다는 뜻입니다.
지금 전해지는 설시법(揲蓍法)은 《역경(易經)》의 <계사전(繫辭傳)>에 전해지고 있는데, 전한(前漢) 시대의 백서주역에서는 이 설시법(揲蓍法)과 관련된 부분은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후한(後漢) 시대 왕충(王充)의 《논형·복서(論衡·卜筮)》편에서 《역경(易經)》의 내용이라고 하면서 설시법(揲蓍法)을 언급한 부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중국학자 장정랑(張政烺)은 이 설시법이 후한시대 전후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周)나라나 춘추시대 유물들에서 보이는 설시법의 흔적은 지금 역경(易經)에서 전해지는 설시법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었다는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역경(易經)에 나오는 설시법은 최종적으로 6, 7, 8, 9의 네 가지 숫자를 사용해서 효(爻)의 음양(陰陽) 속성을 결정하는데, 실제로 춘추시대나 주(周)나라의 유물들에서 보이는 숫자들은 1부터 9까지 다양한 숫자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들만 가지고 역경(易經)의 설시법이 후한시대 전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조금 성급한 결론일 수도 있습니다. 설시법(揲蓍法)이나 점복법(占卜法)의 종류도 사실 여러 가지가 있었고, 주(周)나라 때 사용한 설시법(揲蓍法) 중의 하나가 다행히 전해저서 후에 정식으로 《역경(易經)》에 남겨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역경(易經)에 나오는 설시법의 과정이 다른 설시법들과는 수준차이가 날 정도로 매우 흥미롭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흥미로운 구조를 가진 설시법(揲蓍法)이 다른 설시법들에 비해서 뭔가 특별한 효과를 가지는가는 별도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구요. 그런데 이 《역경(易經)》에 나오는 설시법의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이 이것을 간편화하기 위해 동전을 던져서 점을 치는 척전법(擲錢法)이란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설시법의 의미와 효과를 논하는 것은 매우 긴 설명이 필요하니 여기선 일단 《역경(易經)》에 나오는 설시법과 그 설시법의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훨씬 간단하고 시간이 절약되는 초간단 설시법을 소개할까 합니다.
1. 《역경(易經)》의 설시법
《역경(易經)》의 설시법은 기본적으로 50개의 나무막대를 가지고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그 중 한 개는 바닥에 놓고 사용하지 않으므로 실제로는 49개의 막대로 설시법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왜 하필 50과 49라는 숫자가 나오는지는 제 책 <해와 달의 노래, 주역> 제2부에 상세히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단 결론적인 방법만 알아볼 것입니다.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설시법(揲蓍法)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연(大衍)의 수는 50인데 그 중 49개만 사용한다. 이것을 둘로 나누어 양(兩)을 나타낸다. 그리고 하나를 떼어 걸어서 삼(三)을 나타낸다. 4개씩 떼어내서 사시(四時)를 나타낸다. 이렇게 때어내고 남은 것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扐) 윤달을 나타낸다. 윤달은 5년에 두 번 돌아오니, 손가락 사이에 끼는 륵(扐)의 과정을 두 번 반복한다.
(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分而爲二以象兩 掛一以象三 揲之以四以象四時 歸奇於扐以象閏 五歲再閏 故再扐而後掛)』
매우 간단하게 써져 있지만, 이해가 쉽지 않아서 풀이를 해 보겠습니다.
1) 대연의 수는 50인데 그 중 49개만 사용한다. (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우선 가느다란 막대 모양의 시초(蓍草) 혹은 서죽(筮竹. 가는 나뭇가지) 50개를 준비한 뒤, 그 중 1개만 떼어서 두고 49개를 손에 잡습니다. 이 1개의 시초(蓍草)는 태극(太極)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2) 49개의 산가지를 둘로 나눠 양(兩)을 나타낸다. (分而爲二以象兩)
그 다음 이 49개의 시초를 임의로 양쪽으로 나눕니다. 이것은 양의(兩義)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양의(兩義)는 태극(太極)에서 음(陰)과 양(陽)이 갈라져 나온 것을 뜻합니다.
3) 하나를 손가락에 걸어 삼(三)을 나타낸다. (掛一以象三)
이때 왼 손의 시초는 그대로 쥐고 있고 오른 손의 시초는 바닥에 놓은 뒤, 바닥에 놓은 우측의 시초에서 한 개의 시초(蓍草)만 꺼내서 왼손의 4째와 5째 손가락 사이에 끼웁니다.
여기서 왼쪽의 시초는 천(天, 하늘)을 상징하고, 바닥에 놓은 시초들은 지(地, 땅)를 상징하며, 바닥에서 집어 왼손의 4~5지 사이에 끼운 1개의 시초는 인(人, 사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4) 4개씩 덜어내서 사시(四時)를 나타낸다. (揲之以四以象四時)
그 다음 왼손에 있던 시초들을 4개 이하가 남을 때 까지 4개씩 집어서 떼어 놓습니다. 이렇게 시초를 4개씩 헤아려 덜어내는 것을 설시(揲蓍)라고 부르며 이는 사시(四時)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5) 남은 산가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윤달을 나타낸다. (歸奇於扐以象閏)
4)의 과정을 마치고 왼손에 남은 4개, 혹은 3개 혹은 2개나 1개의 시초들을 좌측 3지와 4지 사이에 끼웁니다. 이것은 윤달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6) 5년에 윤달이 두 번 오므로 설시를 한 번 더한다. (五歲再閏 故再扐而後掛)
이번엔 아까 우측 손에서 바닥에 내려놓았던 시초(蓍草)들을 가지고 위에 4), 5)번의 설시(揲蓍)과정을 합니다. 그리고 남은 4개 이하의 시초(蓍草)를 이번엔 왼 손의 2~3지 사이에 끼워 둡니다. 윤달이 5년에 두 번 오는 것을 나타내려고 설시(揲蓍)를 두 번한 것이라고 합니다. 앞서 왼손의 산가지로 설시(揲蓍)한 것을 ‘1차 설시’라고 부르고, 우측에 내려놓은 산가지로 설시(揲蓍)한 것을 ‘2차 설시’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를 일변(第一變)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마치면 처음에 4~5지 사이에 있던 시초 1개와 그 뒤에 3~4지 사이에 시초, 2~3지 사이의 시초의 개수를 셉니다. 그러면 그 수는 항상 5 혹은 9가 됩니다.
7) 남은 시초들로 위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그러면 이제 남은 시초(蓍草)는 모두 40개 혹은 44개가 남습니다. 이것들을 가지고 다시 위에 2)번부터 6)번까지 과정을 되풀이 합니다. 이번에는 최종 결과가 4 혹은 8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이변(二變)이라고 합니다.
8) 남은 시초들로 위 과정을 또 반복한다.
그러면 이제 남은 시초(蓍草)는 모두 40 혹은 36 혹은 32개가 됩니다. 이것들을 가지고 다시 위에 2)번부터 6)번까지 과정을 되풀이 합니다. 이번에도 최종 결과가 4 혹은 8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삼변(三變)이라고 합니다.
9) 위에 세 번의 반복과정을 통해 나온 수를 모두 더한 뒤, 49에서 빼고, 그 뺀 값을 4로 나눈다.
세 번의 설시를 통해 나온 숫자들을 합치는데 만일 이 숫자가 5, 4, 4였다면 5+4+4=13이 됩니다. 그 다음 이것을 49에서 빼주는데 5, 4, 4가 나온 경우는 49-13=36이 됩니다. 그 다음 이렇게 나온 숫자를 9로 나누는데, 앞의 예에서 36을 4로 나누면 9가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값들은 모두 6, 7, 8, 9의 네 가지입니다. 6은 태음(太陰), 7은 소양(少陽), 8은 소음(少陰), 9는 태양(太陽)이라고 합니다. 즉 7은 양(陽), 8은 음(陰)이고, 6은 음(陰)이 동한 것이며, 9는 양(陽)이 동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는 여기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제 책 <해와 달의 노래, 주역> 제2부에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겨우 하나의 효(爻)를 얻은 것입니다. 여섯 개의 효(爻)로 이루어진 괘를 하나 만들려면 이것을 다시 5번 더 해서 총 여섯 효를 만들어야 하니 이 과정은 매우 길고 복잡합니다. 또, 각각의 변(變)마다 설시를 왼손, 오른손 해서 모두 두 번 하라고 나오지만. 사실 왼손에 남은 산가지 개수만 세도 이미 결과는 다 나오게 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정성스러운 의식’이라는 측면을 떠나 공식의 산출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2차 설시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2차 설시가 필요 없는 훨씬 단순한 과정의 초간단 설시법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2. 이징의 초간단 설시법
제가 만든 초간단 설시법은 일일이 나무막대 숫자를 세지 않고 간단하게 값을 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제가 고안한 설시표라는 아래한글 파일을 PC 에서 열어두고 마우스를 스크롤해서 표를 둘로 나누는 것으로 나뭇가지를 둘로 나누는 것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표 안에 각 줄마다 각각의 결과에 해당되는 숫자와 음양(陰陽) 표시를 해 두어서 마우스 스크롤 1번에 1차 설시가 간단하게 끝나고 마우스 스크롤 3번에 1개의 효(爻)가 구해지는 매우 빠른 방법입니다.
위에 소개한 역경(易經)에 나오는 설시법과 동일한 원칙이면서, 역경(易經)의 설시법이 10~15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단 3분 내외로 끝나는 방식입니다.
자세한 해설은 아래에 올린 동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설시법을 이용하려면 한 장짜리 설시표(揲蓍表)가 필요합니다.
제가 만들어 놓은 설시표(揲蓍表)를 다운 받아 쓰시면 됩니다.
설시표(揲蓍表)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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